전북 남원시의 골목길을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16년 남원을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지난해 기준 전국 226개 시군구 중 42%가 소멸 위험 지역에 해당한다. 남원=윤성호 기자 수도권에 인구와 기업이 몰리고 지방은 소멸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논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정부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참여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웠고 정부 예산에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가 있습니다. 해마다 약 10조원이 ‘균형발전’ 명분으로 쓰입니다. 꽤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을까요. 국민일보 이슈&탐사2팀은 정부 균형발전예산에 관한 심층분석 기사를 5회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지난 23일 국회 대정부 질문 시간. 단상에 선 김부겸 국무총리를 향해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국가균형발전의 미흡함에 대한 지적이었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장에서 느끼는 지방 소멸 상황은 훨씬 심각한데 정부의 대응은 대단히 느긋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일보 ‘144조 균형발전예산 대해부’ 시리즈 1회 기사(2021년 6월 14일자 1·3면)에 보도된 성경륭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진단을 인용하고 “‘지금 균형발전 정책과 제도는 형태만 남았다’는 평가가 굉장히 혹독하고 뼈아프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윤덕 의원도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모여 산다”며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서로 책임을 미루는 데 그치고 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가 정작 수도권 지하철과 도로를 만드는 데 쓰였다”며 “이대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냐”고 질의했다. 김 총리는 “수도권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의회 구조가 문제다. 실질적인 재원 배분 권한은 국회가 쥐고 있지 않으냐”고 맞받았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를 상대로 질의응답이 진행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취재팀이 국가 균형발전의 해법을 듣기 위해 만난 전문가들의 해법은 다양했다. ‘재정 투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부터 ‘차라리 균형발전예산을 없애는 게 낫다’는 의견까지 온도차가 뚜렷했다. 다만 이들은 “당장 변화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돈으로 풀릴 문제 아냐” 취재팀은 시리즈 1회 기사에서 수도권에 투입되는 균형발전예산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특히 서울 지역 예산이 2008년 361억원에서 올해 2267억원으로 527% 급증한 점을 지적했다. 지방에 더 많은 예산을 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전문가들은 “재원으로 풀 문제는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지방행정학회장을 지낸 김재훈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 인구 감소를 돈으로 막기는 쉽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균형 발전이 1순위다’ 그러면 10조원이 아니라 20조원, 100조원을 투자하면 되겠죠. 하지만 소멸되는 곳에 돈을 쏟아붓는 게 바람직한가, 그럼 얼마를 쏟아부으면 그 지역이 더 좋아질까. 그러다 보면 ‘균형발전을 꼭 해야 하느냐’라는 지점까지 논쟁이 이어질 수 있어요. 다른 곳에서 세금을 걷어서 지역에 쓰는 일에 전 국민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보다 사람이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균형발전에 오래 관여해 온 한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예산을 지방에 너무 많이 쓰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 지방정부 규모가 상당히 커요. 그렇게 돈을 쏟아부어도 상황은 악화되고 있어요. 돈만으로는 안 되는 거죠. 사람이 가고, 기업이 가야 돼요. 그런데 교육도 일자리도 다 수도권에 있어요. 현실적으로 대치동에 가야 서울대를 가니까 다들 대치동에 있으려고 하죠. 지금 이 상태로는 돈을 아무리 써도 안 될 겁니다.” 균형예산, 없애야 한다? 그렇다면 균형발전예산은 무용지물인 것일까. 시리즈 2회(6월 15일자 1·8면) 및 3회(6월 17일자 10·11면)를 통해 지적한 ‘목적 없는 균형발전예산’ 편성 사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해법이 엇갈렸다. 김재훈 교수는 “균형발전예산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솔직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해야 그 다음에 대안이 나오는 거죠. 명분과 실제 상황이 다른 것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성경륭 전 위원장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균형발전예산의 도입 취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균형발전예산은 지역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각 지역이 스스로 발전 계획을 세우면 그에 필요한 재원을 주겠다’는 것이 도입 취지였죠. 기존 예산 제도의 약점과 맹점을 넘어설 수 있도록 설계한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라도 도입 취지를 재점검해야 합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별·부처별로 균형발전예산 배분 현황 등을 연구해온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균형발전예산이 어떤 기준으로 각 지역에 배분된 건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기획재정부와 각 부처, 지자체, 균형위까지 제각기 다른 관점과 권한을 갖고 있어 중장기적인 철학과 별 상관없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도 균형발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 교수는 “균형발전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단계별 전략이 없다면 (예산도)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포퓰리즘에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관론’부터 바꿔야 한다 지역 간 불균형과 ‘지방 소멸’에 대한 비관적 인식을 바꾸는 것도 관건이다. 균형발전을 연구하는 학자들마저 “지역 간 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방법을 찾는다면 노벨경제학상 감”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할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국가균형발전·행정수도추진단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태스크포스(TF) 결과 보고서’에서 “전문가와 정책 엘리트까지 ‘지역 불균형은 이제 되돌리기 힘든 수준’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균형발전을 주도해야 할 사람들마저 비관론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광역 시·도별 소득 분포의 변화를 주요 연도별로 표현한 ‘카토그램’(변수의 수치를 기하학적 속성으로 나타낸 지도). 수도권 소득 규모는 2015년 400조원을 돌파한 뒤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국가통계포털 지역소득을 토대로 제작됐다. 국토연구원 제공 TF는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균형발전예산 개편’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첫 번째 과제로 지역이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 뒤 책임까지 지도록 실질적 재정분권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17개 시·도 및 226개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균형발전총괄지표’를 균형발전예산 편성에 활용하자는 방안도 내놨다. 현재 균형위는 통계청과 함께 개발한 ‘균형발전지표’를 정부 정책에 시범 적용하고 있다. 지표를 더욱 고도화해 균형발전 정책 및 예산 편성 등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전담하는 이른바 ‘균형발전분권부’를 신설하는 것도 해법으로 거론된다. TF는 보고서에서 행정안전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해 확대 설치하는 1안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행정위원회로 격상하는 2안을 제시했다. 방식이 무엇이든 균형발전 전담 기구에 실질적인 집행력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이 기존과 다른 수준의 지역 발전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지역일자리팀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도시 건설 등의 정책들이 각 지역의 역량 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양질의 일자리 제공과 교육·돌봄 지원, 문화 인프라 혁신 등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취재팀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를 해소할 방법을 취재하며 전·현직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만나 견해를 물었습니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2018~2020년 역임)과 현직 김사열 위원장(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입니다. 국가 균형발전 정책의 현실을 되짚어보고 내일을 모색하기 위함입니다. 인터뷰 내용을 아래와 같이 차례로 전합니다. 송재호 “개헌 아니면 균형발전 불가능” “국가 균형발전은 이제 개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방 소멸’ 사태의 해법을 묻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헌법 123조는 ‘국가는 지역 간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라는 게 송 의원의 진단이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 균형발전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송 의원은 2018년부터 2년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역임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정부가 균형발전을 위해 최소한 이런 것들을 해야 된다는 책무 사항까지 헌법에 적어야 합니다. 그래야 균형발전을 정부의 중요한 임무로 만들고, 국회가 관계 법령을 정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2018부터 2년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맡았던 송 의원은 “균형발전을 책임질 컨트롤 타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균형위는 컨트롤 타워라기엔 법적 권한도 책임도 없었다”고 했다. “프랑스나 일본은 균형발전을 위한 컨트롤 타워가 있어요. 우리나라도 정말 제대로 하겠다면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행정위원회로 (균형위가) 격상돼야 합니다.” 송 의원은 지역 간 격차 해소를 목표로 2005년부터 운영 중인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놨다. 그는 “균형발전예산을 지출한 상황을 국회와 국민에게 보고하고, 정말 균형발전을 위해 썼는지 심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균형발전을 위한 회계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쓰여야 한다. 예산을 기획하고 배분하는 권한도 컨트롤 타워에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송 의원은 이어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서울로 오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이 세종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무원들을 하루 종일 여의도에 붙잡아놓는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며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과 같은 촌극은 그만해야 한다. 국회는 물론 청와대까지 세종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균형발전을 총괄하는 이른바 ‘광역청’ 설립도 제안했다. 그는 “호남청 영남청 등 광역청을 설립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조율하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광역청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맞물려 돌아간다면 균형발전 정책에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지방이 소멸된다는 이야기는 농어촌이 없어진다는 거고, 그건 결국 대한민국이 문 닫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 부담은 우리 모두가 다 지는 거예요.” 김사열 “청년 관점에서 균형발전 접근할 것”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취재팀과 만나 “이대로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면 지방은 물론 수도권까지 소멸될 수 있다”며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쏟아붓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 예산 대부분이 수도권 집중에 쓰였다는 점을 거론하며 “왜 이렇게 됐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은 철도나 지하철이 그물망처럼 돼 있지만 호남권이나 영남권, 강원권 등은 그렇지 않다”며 “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점을 인정하고 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청년을 위한 균형발전예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김 위원장은 이어 “수도권 집중 현상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코로나19가 잦아든 이후에도 또 다른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은 도시로의 쏠림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팬데믹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수도권 인구가 줄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 지방 교육을 살리고 기업에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청년이 지역발전의 미래인데, 균형발전예산은 그런 관점에서 편성되지 않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각 지역을 돌며 청년 문제를 경청하고 균형발전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균형위는 현재 각 지역의 발전 수준을 정량·정성적으로 평가한 균형발전지표를 국가균형발전시스템 나비스(NABIS)에 공개한다. 17개 시·도와 226개 시·군·구의 인구·일자리·교육 등 통계 수치와 더불어 주거 만족도 등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수치화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대규모 국가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여부를 좌우하는데, 균형발전지표는 지방에 대한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균형발전지표를 예타 및 정부 정책 전반에 반영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03년 균형위 출범 이후 여덟 번째 위원장이다. 그는 “역대 정부마다 균형발전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정권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균형발전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로 많은 것이 달라진 시점에서 당장의 성과보다 미래 세대가 원하는 균형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email protected] [114조 균형발전예산 대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