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재용 수감 이후 삼성전자 사상 최대 실적…역할론, 현실과 달라” 전성인 홍익대 교수 “부당한 처벌 회피, 국가 질서 뒤흔들 것…대규모 투자 발표, 사면·가석방 맹점 드러내” 발행2021-07-06 11:03:51 수정2021-07-06 11:03:51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2016년 2월 16일 서울 중구 정동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박근헤 정부 3년 평가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2016.02.16.ⓒ뉴시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가석방 요구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죄를 짓더라도 역할론을 동원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인식은 국가 질서 밑바닥을 뒤흔든다”고 경고했다. 전 교수는 삼성이 총수 문제에 직면하면 경영 원칙을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전자 의사결정체계에 대해 “총수 문제가 걸린 한 ‘이성을 잃어버리는’ 형국”이라며 “삼성이라는 재벌 집단의 가장 핵심 문제”라고 짚었다. 지난 5월 삼성전자가 미국 신규 투자 계획을 공식화한 것과 관련해서는 “이 부회장이 개입했다면 현행법 위반이고, 개입하지 않았다면 총수 없이도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는 방증”이라고 풀이했다. 이재용 수감 이후 삼성전자 호실적 이어가 총수 앞에 ‘이성 잃는 의사결정체계’, 삼성 핵심 문제 일각에서 주장하는 이 부회장 부재에 따른 삼성전자 경영 차질에 대해 전 교수는 현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최근 삼성전자를 보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며 “이 부회장 부재의 영향이 결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부회장 부재와 삼성전자 경영을 결부하는 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86억원 회사자금 횡령 등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 이후 발표된 1분기 실적에서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5% 이상 증가한 9조3,82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65조원을 넘기면서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발표를 앞둔 2분기 실적도 전년 대비 대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 교수는 총수역할론을 앞세운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 요구에 대한 반박을 이어갔다. 그는 “총수가 어떤 역할을 하기 전에 법을 지켜야 한다”며 “법을 어기는 경우 그 역할이 아무리 필요한 역할이라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사람들은 역할이 불법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건 민주 사회가 아니다”라며 “법 앞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은 기업 범죄자에 대한 무분별한 특혜이며, 한국 경제와 삼성전자 신뢰를 훼손하는 “아주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전 교수는 경고했다. 그는 “죄를 짓더라도 적당한 역할론을 동원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인식은 사회 연대감을 저해하고, 국가 질서 밑바닥을 뒤흔든다”고 말했다. 전문경영과 준법이라는 원칙에 기반한 삼성전자 의사결정체계가 총수 관련 사안에서는 무력화된다고 전 교수는 진단했다. 전 교수는 “총수는 언제든지 개인적 이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편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삼성전자 의사결정체계가 기본 구조를 갖췄다 해도, 총수 문제가 걸린 한 그야말로 ‘이성을 잃어버리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총수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이사회 등 의사결정체계를 구성하는 주체 중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게 삼성이라는 재벌 집단의 가장 핵심 문제”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총수 이해관계와 상충될 경우 삼성 계열사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무시되는 일례로 삼성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 사건을 들었다. 삼성웰스토리는 이 부회장이 지분을 가진 삼성물산(구 에버랜드)의 100% 자회사다. 삼성은 삼성웰스토리에 계열사 일감을 몰아줘 배당을 통해 삼성물산과 이 부회장에게 이익을 이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삼성웰스토리가 제공하는 급식에 대한 노동자 불만이 커져 가격 적정성을 검증하고 경쟁입찰로 전환하려 했으나, 미래전략실의 중단 지시로 무산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9년 4월 30일 오후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04.30.ⓒ뉴시스 미국 대규모 투자 발표, 이재용 사면·가석방 맹점 드러내 취업제한 위반 방관하는 법무부, 책임 방기 전 교수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가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의 맹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결정을 이 부회장 옥중경영 일환으로 보는지 묻자 전 교수는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회사 경영에 개입할 수 없으니, 투자 결정에 개입했다면 중대한 법률 위반이 된다”고 지적했다. 특경가법에 따르면, 5억원 이상 횡령·배임을 저지른 범죄자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범죄 행위와 관련된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실형을 선고받은 이후 삼성전자 취업제한이 적용됨에서도, 상근에서 비상근으로 전환할 뿐 미등기 임원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전 교수는 “취업제한 위반은 모범적인 수형 생활에 커다란 반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범적인 수형 생활’은 가석방 요건 중 하나다. 대통령 전권인 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교도소장 추천과 심사위원회 심사 등 절차에 따라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취업제한 상태의 이 부회장이 경영에 개입하는 건 “수감 중 불법을 자행하는 것”이기에 가석방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 교수 설명이다. 이 부회장 사면론에 대해서도 전 교수는 “기업 활동을 위해 필요하다는 취지인데, 취업제한을 규정한 특경가법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현행 법률을 위배하는 경우 대통령은 사면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경영인 중심의 이사회 판단으로 삼성전자 미국 투자 결정이 이뤄졌다 해도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은 설득력이 없다. 전 교수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투자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총수 없이도 대규모 투자사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례로써 사면 논거와 배치되는 증거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재직 상태를 방관하는 법무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법무부는 지난 2월 삼성전자 측에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대상자임을 통보한 이후, 별도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보를 받은 삼성전자 이사회 또는 대표이사가 이 부회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법무부는 재차 해임 요구를 해야 한다. 전 교수는 “법무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며 “옥중경영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불법인 만큼 법무부의 철저한 진상 조사와 사후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 과정에서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한계도 지적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에 삼성의 준법감시 시스템 구축을 권고하며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삼성은 준감위를 설치했다. 당시 전문심리위원회가 준감위 실효성을 평가한 결과,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재판부는 준감위 설치를 이 부회장 양형에 반영하지 않았다. 준감위는 지난 3월 회의에서 이 부회장 취업제한 문제를 다뤘으나, “요건과 범위에 대해 불명확한 점이 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 측에 이 부회장 해임을 권고하지 않았다. 준감위 권고는 관련 법을 준수하라는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전 교수는 “준감위는 총수 문제로 탄생했지만, 정작 그런 태생적 한계로 총수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법리적으로도 각사 이사회는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관한 최고 조직이어야 한다”며 “준법 여부는 준법감시인이 독립적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준감위가 이사회와 준법감시인에 반하는 내용을 강요하면 위법이고, 반대로 이사회와 준법감시인에 순응하기만 하면 존재 이유가 없다”며 준감위 역할의 모순을 짚었다. 최태원(왼쪽부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전략기획담당 사장,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지난 5월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미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1.05.22.ⓒ뉴시스 국정농단·불법승계 사건, 불가분…삼바 회계분식, 시장경제 위협 이재용 사면은 문 대통령 공약과 대치 실형이 선고된 국정농단 사건의 연장선에 있는 불법승계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도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은 부당하다고 전 교수는 지적했다. 전 교수는 “불법승계 사건은 국정농단 사건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며 “뇌물을 준 이유나 부당한 합병을 한 이유, 분식회계를 한 이유가 모두 불법승계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긴밀하게 연관된 일련의 사건들”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수감자를 사면하는 건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불법승계 사건 핵심 쟁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회계분식이다. 검찰은 삼성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키고 사후적으로 제기될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회계분식을 계획·추진했다고 보고 있다. 삼바 회계분식 중대성에 대해 전 교수는 “삼바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을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며 “제일모직 기업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회계기준을 엿가락처럼 휘어가면서 바이오산업을 담당하는 삼바의 가치를 뻥튀기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삼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인지하고도 상장설을 흘렸다. 또한,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은 삼바와 미국 바이오젠이 나눠 갖고 있었으나, 삼성은 삼바 재무 건전성에 유리하도록 지배력에 대한 판단을 편의대로 조작했다. 전 교수는 삼바 회계분식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위협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불특정 다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사 경우 회사 상태를 정확하게 공개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가 사인 간 계약에 개입해 중요한 서류를 정확하게 기재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규제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식회사는 투자 자금을 동원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주주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라며 “삼바 분식회계는 상장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그 여파는 삼바 상장 과정에도 잘못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사면이 불법승계 사건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 교수는 이같은 우려에 대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합당한 근거 없이 이 부회장을 사면하면 ‘곧 풀려날 텐데 뭐 하러 유죄를 선고하냐’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발언에서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고 전 교수는 우려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삼성·현대차·SK·LG 4대 그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 사면 요청에 대해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 발언을 두고, 지난 5월 기자회견에서 “충분히 국민의 많은 의견을 들어 판단하겠다”며 여지를 둔 것에 비해 이 부회장 사면 쪽으로 무게가 실린 것으로 해석이 나왔다. 전 교수도 “분위기를 살피는 발언”이라고 풀이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면권 제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 사면은 부적절하다고 전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풀어주는 건 공약에 반하는 행동”이라며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클수록 파장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