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재명 ‘점령군’ 언급에 낡은 정쟁 시도하는 윤석열
발행2021-07-05 06:40:31
수정2021-07-05 06:40:31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점령군’ 발언이 난데없이 정쟁의 소재가 됐다. 이 지사는 1일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을 찾아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별로 특이할 것이 없다. 이 지사가 그 후 덧붙인 것처럼 미군은 스스로를 ‘점령군’이라고 표현했고 미군정 3년 동안 일제가 만든 관료기구를 통치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이 발언에 대한 보수층의 반응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미군이 해방군이지 어떻게 점령군인가”,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은 해방 후 역사를 집요하게 왜곡해왔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점령군으로 자처한 건 미군이었고, 이른바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은 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조선일보는 미군이 하지도 않은 일을 미군의 몫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
야권의 선두 주자라고 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한 발 더 나갔다. 윤 전 총장은 페이스북에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유력 후보가 이어받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고 썼다. 이 지사가 하지도 않은 말을 가져다 붙이고 이런 인식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고 과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발이 썩 깔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이른바 ‘정통성’과 무슨 상관인지도 의문이거니와, 정통성이라는 가부장적 사고가 오늘의 우리 사회에 무슨 기여를 할 것이기에 이렇게 흥분하는 지도 궁금하다.
윤 전 총장은 한국전쟁까지 끌어들여 “죽고 다친 수많은 국군장병과 일반국민들은 친일파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싸웠느냐”고 묻고 이 지사 등이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과거의 색깔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은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직접 수사해 구속했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에 공감한다는 인식을 내비친 바 있다. 수사는 수사고 사면은 사면이라는 식인데, 이런 기회주의적 인식을 가진 사람이 70년도 더 된 역사에 대해 이렇게 흥분하는 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역사란 오늘의 행동에 대해 기준을 준다. 해방 직후의 실제를 거론한 말 한마디에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열을 올리면서 눈 앞의 현안엔 ‘너도 옳고 또 너도 옳다’고 하니 이념이니 역사니 미래니 하는 말들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