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는 오후 5시15분쯤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기간 일본을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기간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던 구상은 19일 결국 최종 무산됐다. 당초 청와대는 회담 의제 협상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일본 정부와 신경전을 벌였지만 물밑에선 적극적으로 문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했다. 그러나 최근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부적절한 성적 표현 등이 불거지면서 이런 기류가 180도 바뀌었다.
청와대는 도쿄올림픽 참석 결정의 마지노선이었던 이날 오전까지도 방일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오전 CBS 라디오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의 여론과 국회의 의견을 잘 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대통령의 길은 달라야 된다는 신념으로 임해온 것”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소마 공사가 문 대통령을 향해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다”는 막말을 했다는 보도 이후 방일 반대 여론이 커졌지만 감정이 아닌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방일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하지만 오전 9시 참모회의 이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가 달라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9시30분 서면브리핑에서 “막판에 대두된 회담의 장애(소마 공사 발언)에 대해 아직 일본 측으로부터 납득할만한 조치가 없어서 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정부가 소마 공사를 경질할 방침이라고 보도했지만, 청와대는 언론이 아닌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오전 11분35분 정례회견에서 소마 공사 발언에 대해 “외교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했고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다만 소마 공사 경질론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낮 12시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 이어 오후 2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일 정상회담 관련 사안을 두루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많은 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 방일은 취소하기로 결론났다. 다수 참모들은 소마 공사의 발언이 매우 부적절하며, 일본이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일본을 방문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소마 공사의 막말이 문 대통령의 방일 취소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와 관련해 “용납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며 “국민 정서를 감안해야 했고, 이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회의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해 주한일본 대사가 매우 유감스럽다는 공식 표명을 했고, 일본 정부 차원에서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발표한 것에 주목한다”며 “일본 정부는 적절한 후속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할 것이며, 향후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한·일 회담 의제 갈등과 소마 공사의 발언 등이 방일 무산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양국 간 첨예한 현안인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등에서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도 무산 결정에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측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임기 말까지 계속 일본과 대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