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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운 작가가 지난달 10일 경기 남양주 작업실에서 현재 작업 마무리 단계인 리사이클 아트 ‘백합 향기’에 색을 입히고 있다. 남양주=강민석 선임기자
이태운(72) 작가가 ‘리사이클 아트’를 시작한 건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다 퇴직한 직후였다. 많아진 여유 시간에 음악이나 들을까 해서 오디오를 하나 샀는데, 오디오보다 눈에 들어온 게 포장재 ‘펄프몰드’였다. 그리고 거기에 그림을 그렸다.
완충재 역할이 끝난 펄프몰드에 퇴직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걸까. 버려진 포장재가 하나의 작품이 돼 가는 걸 보면서 이 작가는 끝이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그는 캔버스가 아닌 펄프몰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10일 찾은 이 작가의 작업실은 경기도 남양주 한 아파트 주차장에 위치한 창고였다. 8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그는 방치된 이 공간을 아파트 관계자들에게 부탁해 작업실로 만들었다. 공간마저 재활용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이 작가는 주민들이 사용하다 버린 가구 등을 재활용해 책상, 소파, 테이블 등으로 실내를 꾸몄다. 화분과 폐자전거를 이용해 근사하게 꾸며 놓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작업실은 생명 에너지로 가득했다.
이 작가는 “버려진 것을 다시 사용한다는 건 멋진 일”이라며 “신앙적으로 연결하면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의 삶이 그랬다. 작업하면서 늘 예수님을 묵상한다”고 덧붙였다.
펄프몰드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 작가는 이를 중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작업 단계도 캔버스에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일단 가장 먼저 펄프몰드를 잘라 붙여서 판을 만들어야 했다. 펄프몰드가 압축된 종이다 보니 가위나 칼로는 자르기 쉽지 않았다. 이 작가는 톱을 사용했다.
판이 완성되면 앞뒤로 아크릴 물감을 칠했다. 일종의 코팅 작업이다. 처음엔 판에다 바로 유화로 그림을 그렸다. 그랬더니 뒷면에 곰팡이가 생겼다. 펄프몰드로 캔버스를 만드는 마지막 단계는 뒷면에 뼈대를 세우는 일이다. 뼈대 없이는 판이 그림 무게를 못 견디고 무너지기 일쑤였다. 이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 후 얻은 결과였다.
이 작가 작업실엔 갓 뼈대가 세워진 펄프몰드 캔버스나, 아크릴 물감 코팅 작업 후 건조 중인 판도 많았다. 작업이 끝난, 또 작업이 진행 중인 작품도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네모 반듯한 캔버스가 아닌 ‘W’자 모양의 캔버스, 가운데가 뻥 뚫린 다이아몬드 모양 캔버스 등 개성 넘치는 모양들로 가득했다. 더불어 울퉁불퉁한 펄프몰드 특성 때문에 작품이 입체적으로 보였다. 이 작가는 “얼핏 보면 초기 기독교 지하 교회였던 카타콤 벽에 그려진 그림 같은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주로 본인의 신앙 체험적인 내용을 캔버스에 그렸다. 이는 리사이클 아트를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신앙이 없었을 땐 주말마다 풍경화를 그리러 나갔다”며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부턴 설교 말씀 중 감동 받았던 부분이나 신앙 체험 같은 걸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이태운 작가가 펄프몰드에 작업한 작품들. 위 사진은 작품명 에덴, 아래 사진은 작품명 오병이어다. 이태운 작가 제공
지금은 없어진 제2회 성화대전(1985년)에서 대상을 차지했던 ‘베드로의 눈물’도 이 작가의 고백이 담긴 작품이었다. 그는 “신앙생활을 잘하겠다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그러지 못한 삶을 살 때가 많다”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술·담배를 끊지 못했던 내 모습이 꼭 예수님을 부인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를 반성하는 마음을 베드로의 눈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해당 작품은 현재 이스라엘 국립미술관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풍경화를 그렸을 때에도 이 작가는 자신만의 암호처럼 그림에 믿음의 표식을 새겨 넣었다. 이 작가는 “기독교적인 그림만 그리면 사람들이 잘 안 산다”며 “때문에 가끔 풍경화로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을 그리는데, 그림 맨 밑에다 화살을 조그맣게 하나 그린다”고 말했다. 그는 “부귀영화는 화살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의미”라며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지 모란을 집에 걸어 놨다고 해서 주는 건 아니라는 의미를 내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작가 작업실엔 그의 고백이 담긴 그림이 수십여점 보관돼 있었다. 이 작가는 자신이 선교지에 헌물한 것까지 합하면 이런 그림이 수천점에 이른다고 했다. 일본 태국 미국 에티오피아에도 이 작가가 그린 그림이 전시돼 있고, 그가 다니는 명성교회에도 리사이클 아트를 포함해 수백점이 보관돼 있다.
현재 이 작가는 ‘빛의 도시’ 리사이클 연작을 작업 중이다. 빛의 도시는 그가 남미 선교사 간증을 듣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으로 3년 전부터 시리즈로 계속 그리고 있다. 이번이 5번째 작품으로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다. 이 작가는 “어둠으로 가득 찬 한 동네에 복음이 들어가면서 그곳이 빛의 도시가 되는 걸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지금은 작품보다 소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앞으로 작품 자체의 예술성에도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남양주=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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