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마인’에서 호연을 펼친 배우 이보영과 김서형, 예수정(왼쪽부터). CJ ENM 제공
이야기는 ‘카덴차 살인사건’에서 거슬러 올라간다. 카덴차라는 이름의 재벌가 안채에서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기 직전인 막내아들이 피를 흘리고 숨진 채 발견된다. 의문의 살인사건 용의자를 추리하는 게 시청자들의 임무다. 누가 죽였는지를 추리하며 따라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누가 죽였는지는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재벌가의 암투와 치정, 폭력, 살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흔하다. 28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마인’은 독특한 스토리와 세련된 연출, 감각적인 음악·배경·패션 등의 요소로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재벌가의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다. 상류층인 효원가(家)의 두 며느리 서희수(이보영 분)와 정서현(김서형 분) 등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남자들에게 상처받고 분노한 여자들이 진정한 자신의 것(마인·mine)을 찾는 이야기다.
‘마인’엔 미스테리와 풍자, 유머가 잘 버무려져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연출이 돋보인다. 드라마는 살인사건 14일 전부터 장례식 이후의 시간까지 약 3주를 넘나들며 사건의 단서들을 툭툭 보여주는데,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청자들은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의심하게 되고 사건은 하나로 모이는 듯하다가 흩어진다.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이 효원가의 화려한 저택으로 등장한다. 시청자들에게 재벌가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재미를 주기 위해 제작진은 음식 가구 식기 등에 공을 들였다. 기존 재벌 드라마에서 남성들이 고급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 주로 등장했다면 ‘마인’에선 차가 많이 등장한다. 촬영 현장엔 티소믈리에가 상주했다. 배우들은 직접 차 마시는 법, 찻잔 잡는 법을 배웠다.
연출을 맡은 이나정 감독은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여서 차를 마시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하는 티타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차의 세계를 확장해 보여주면 어떨까 했다”면서 “효원가의 다이닝홀은 전 세계의 다양한 차와 그릇을 배치하도록 디자인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이어 “상류층은 가구도 작품과 소장품으로 생각하기에 앤틱가구부터 최고가의 디자이너 가구까지 다양하게 접근했다”며 “정서현의 서재에 있는 의자는 유럽 왕실에서 사용하던 의자로 1억원이 넘는 최고가의 빈티지”라고 전했다.
드라마 전체에 흐른 음악은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음악은 그룹 시나위, 삐삐롱 스타킹 출신으로 영화 ‘곡성’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황해’ ‘도둑들’ 등에 참여한 달파란이 맡았다.
달파란은 “남성적인 느낌과 여성적인 느낌의 경계가 모호한 음악, 슬랩스틱 코미디와 블랙 코미디의 경계가 모호한 음악을 만들려고 했고 트렌디한 사운드와 비트의 결합을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주연 배우 이보영과 김서형, 효원가에 이용당하고 복수하는 옥자연(강자경 역)의 호연은 브로맨스보다 강력한 워맨스(womance)를 보여준다. 효원가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엠마 수녀 역의 예수정은 드라마 전체의 내레이션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뒤늦게 정주행을 시작할 시청자들을 향한 팁 하나. ‘누가 죽였나’를 넘어 ‘왜 죽었나’에 집중하면 드라마를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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