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포스트가 13일 보도한 여룹바알 비문 발견 기사. 예루살렘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예루살렘포스트(JP)는 이스라엘문화재관리국(IAA)이 이스라엘 남부 키랴트 갓(Kiryat Gat) 근처 키르바트 에르라이(Khirbat er-Ra'i)에서 구약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여룹바알의 이름이 새겨진 3100년 전 비문을 발견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문은 도자기 그릇에 잉크로 쓰여 있다. 여룹바알은 기드온의 별명이다.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사사로 40년간 활동했다.
JP에 따르면 도자기 물병에 새겨진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은 성경 본문 밖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다. 학자들은 주인이 항아리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당시에 문자를 도자기에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룹바알이 직접 썼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문은 BC 12~11세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지워싱턴대 비문 전문가 크리스토퍼 롤스턴이 해독한 비문은 ‘요드’(yod·맨 위가 깨짐), ‘레시’(resh), ‘벳’(bet), ‘아인’(ayin), ‘라메드’(lamed)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들은 당시 가나안족 언어로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여룹바알’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키랴트 갓 근처 키르바트 에르라이에서 발견된 '여룹바알'이라는 구약시대 사사 이름이 새겨진 3100년 전 도자기 비문 모습. 신화연합뉴스
발굴 현장을 공동 지휘하고 있는 히브리대 요세프 가핀켈(고고학) 교수는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은 사사 기드온 벤 요아쉬의 대체 이름으로, 사사기의 전통에서 잘 알려져 있다”며 “기드온은 처음에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우상 숭배와 싸우는 것으로 언급돼 있다”고 설명했다.
성경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사로 부름을 받은 뒤 단을 쌓고 ‘여호와 살롬’이라 불렀다.(삿 6:24). 또 바알의 제단을 뒤엎고 신성히 여겨지던 아세라 상을 찍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드온은 여룹바알, 곧 ‘바알과 더불어 논쟁하는 자’란 별명을 얻었다.(삿 6:28~32) 이후 여룹바알이란 이름은 ‘우상과 논쟁하는 자’란 뜻의 ‘여룹베셋’으로 바뀌어 불리기도 했다.(삼하 11:21)
소명을 받은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위해 군사를 모집했다. 그는 승리를 확증하는 표적을 하나님께 요구했고, 하나님께서는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온 땅에는 내리지 않는 표적과, 반대로 온 땅에만 내리고 양털에 내리지 않는 두 가지 표적을 보여주셨다.(삿 6:36~40)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3만2000명의 병사 중 물을 손으로 떠서 핥아 먹는 용사 300명만 선발해 미디안의 두 왕인 세바와 살문나를 생포하는 등 대승을 거뒀고, 이스라엘의 국경을 요단강까지 확장했다.(삿 7:22~23; 8:1~21)
비문이 발견된 키르바트 에르라이는 2015년부터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이곳은 이미 19세기 영국 고고학자들이 조사에 나서면서 알려졌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라기스가 한 때 자리했던 고고학 유적지와도 가깝다. 강후구 서울장신대 교수는 “텔라기스에서 3㎞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한 고고학자가 지난 12일(현지시간) 키르바트 에르라이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도자기 등을 관찰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가핀켈 교수에 따르면 키르바트 에르라이는 주로 가나안 유적지였지만 강력한 블레셋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블레셋의 패권 아래 살기 위해 온 가나안 난민들이 주로 거주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비문은 성경 전통에서 기드온이 아니라 다른 여룹바알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지만, 그 항아리가 기드온 사사의 것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