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입력 : 2021-07-16 07:00:00 수정 : 2021-07-16 07: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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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가짜 수산업자 골프채 수수 의혹’에
“중고 골프채 빌려 쓴 것…풀세트 안 받아” 주장
언론인, 100만원 초과 금품 받을 시 3년 이하 징역형
법조계 “‘중고·빌려 썼다’ 입증 시 혐의액 줄 수 있어
장기간 보유한 점 등은 ‘빌렸다’ 주장 믿기 어려운 정황”
가짜 수산업자에게 금품을 받은 의혹으로 입건된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8월 15일 골프 때, 김씨 소유의 캘러웨이 중고 골프채를 빌려 사용했습니다.”
100억 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된 ‘가짜 수산업자’ 김모(43) 씨로부터 골프채를 받은 의혹에 휩싸인 뒤 잠행을 이어오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13일 경찰 조사 뒤 돌연 이런 입장을 밝혔다. 김 씨로부터 수백만 원 상당의 골프채를 받았다는 의혹을 직접 반박하며 ‘중고’ 골프채를 ‘빌려 썼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 전 위원이 ‘중고’와 ‘빌려 썼다’는 점을 확실히 입증할 경우, 골프채가 100만원을 넘더라도 원래 가격보다 낮은 ‘렌트비’ 수준으로 혐의액이 책정돼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다만 그가 해당 골프채를 상당 기간 보유하고 있었던 점 등에 비춰 봤을 때, 주장의 신빙성이 낮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이 전 위원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이 전 위원은 현직 기자 시절 김 씨로부터 수백만 원 상당의 골프채 등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위원은 지난 13일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언론에 보낸 입장문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은 진실이 아니다”라며 “지난해 8월 15일 골프 때 김씨 소유의 ‘캘러웨이’ 중고 골프채를 빌려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후 저희 집 창고에 아이언 세트만 보관됐다”면서 “풀세트를 선물로 받은 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골프채를 빌린 이유와 관련해선 “당일 오전 큰비가 와서 골프 라운딩이 불가하고 아침 식사만 한다는 생각으로 골프채 없이 (골프장에) 갔다가 빌려서 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산업자를 사칭한 116억대 사기범 김모(43·구속)씨의 SNS에 올라온 외제차를 탄 김씨의 모습. 연합뉴스
이 전 위원 주장처럼 그가 김씨로부터 새 골프채 세트를 선물 받은 것이 아니라 중고 골프채 세트를 빌려 쓰기만 한 것이라면, 혐의 적용엔 어떤 차이가 발생할까.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은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등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엔 언론사 임직원도 포함되기 때문에, 당시 현직 기자였던 이 전 위원이 김씨로부터 100만원이 넘는 금액의 골프채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면 이 조항이 적용된다.
하지만 문제의 골프채가 100만원을 넘는다 하더라도, 이 전 위원 주장처럼 ‘중고 골프채를 빌려 썼다’는 점이 입증된다면 해당 조항 적용 여부는 다소 구체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게 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빌려서 사용한 것이라면) 소유권이 넘어오진 않았으니까, ‘사용 가치’만 있는 것”이라며 “이 전 위원 입장에선 ‘그 중고 골프채를 내가 사용해봤자 사용 가치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100만원 이상의 금전을 수수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수는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위원이 중고품을 빌려 썼다는 점이 명확히 입증된다면, 원 골프채값 전부가 혐의 적용 액수로 판단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골프채의 원 시장가격에서 김씨가 사용했던 기간과 이 전 위원이 빌려 간 기간 등을 고려해 일종의 ‘렌트비’가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치고 취재진을 피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장윤미 변호사는 “빌렸다는 건 당연히 다시 반환한다는 게 전제된 개념이기 때문에 수수(주고받음)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뇌물죄 관련 사건에서도 돈이 오간 흔적이 있으면 ‘나 이거 받은 게 아니라 빌린 건데’, ‘나중에 줄 건데’라는 식으로 항변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전 위원이 골프채를 빌렸다고 주장한 시점이 지난해 8월 15일로, 이후 상당 기간이 흐른 만큼 그의 주장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 변호사는 “‘빌려줬다’라고 하는데, 그럼 돌려주지 않은 시점이 굉장히 길다”면서 “(상당 기간 흐름 점이) 빌려줬다고 보기 좀 어려운 정황으로는 당연히 참작될 것 같다”고 관측했다. 장 변호사는 “법적으로 판단해야겠지만, 일단 지금 (이 전 위원이) 내놓는 변수 자체가 그렇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김씨가 이 위원에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선물로 줬다’고 진술한다면, 이 전 위원의 주장은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승 연구위원은 “뇌물 등을 판단할 때 준 사람의 의사가 중요하지 받은 사람의 의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뇌물 등을) 준 사람이 ‘내가 그냥 그 사람 쓰라고 준 것이다’라고 한다면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가 이미 소유권 이전을 마음먹고 이 전 위원에게 100만원이 넘는 골프채를 줬다면, 이 전 위원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승 연구위원은 “김씨가 끝까지 ‘내가 골프채 서너 개가 있었으니까, 그냥 나중에 한 번 더 라운딩 갈 때 (빌려줬던 골프채를) 받으려 했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좀 달라진다”면서 “(이 경우) 조사로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프채 가치 100만원 이하라면?
문제의 골프채가 100만원 이하로 판단되거나, 이 전 위원이 빌려 쓴 가치가 100만원 이하로 책정될 경우 그는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
그가 김씨로부터 골프채를 받은 행위가 기자라는 직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과태료 처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청탁금지법 제8조 제2항은 ‘공직자 등은 직무와 관련하여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제1항에서 정한 금액(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 초과) 이하의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어길 경우엔 그 위반행위와 관련된 금품 등 가액의 2∼5배에 상당하는 금액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동법 제16조는 ‘공공기관의 장은 공직자 등이 직무수행 중에 또는 직무수행 후에 제8조 등을 위반한 사실을 발견한 경우에는 해당 직무를 정지하거나 취소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나, 이 전 위원은 이미 언론사를 퇴사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조항은 적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승 연구위원은 이 전 위원의 주장과 관련해 “(빌려 쓴) 사용 가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씨의 주장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서 이 전 위원의 주장과 관계없이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이 전 위원은) ‘골프채를 빌린 거다. 그런데 빌린 게 인정 안 되더라도 (중고이기 때문에) 100만원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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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채 받은 게 아니라 '빌렸다'는 이동훈… 처벌 차이는? [법잇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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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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