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쟁,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
정기후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릴레이 기고]
배너지와 스티글리츠, 미국의 선택
한동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Abhijit Banerjee) 교수의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다. 대가의 입장을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그는 발전도상국에서의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지만, 선진국에서의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선진국은 가난한 사람을 선별할 수 있는 행정 능력이 있다는 것, 자영업자의 비중이 낮다는 것 등이 그 이유이다.
선진국에서의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훨씬 많이 있다. 2021년 열린 경기도 기본소득 국제 컨퍼런스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경기도에서 실시한 재난기본소득에 대하여 극찬을 하였다. "소멸성 지역화폐 카드로 지급되는 경기도의 프로그램은 제대로 설계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코로나 재난이 닥쳤을 때 미국은 부자를 포함해서 거의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다. 행정 능력이 있는 선진국이지만 배너지의 의견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40년 가까이 기본소득을 받고 있는 미국 알래스카 주민들은 기본소득을 없애려는 몇 차례의 주민투표를 모두 부결시켰다. 선진국 주민들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새뮤얼슨과 솔로우의 기본소득 촉구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1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얀 틴버겐(Jan Tinbergen)은 네덜란드 노동당에서 기본소득 운동에 헌신하였다.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과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은 1968년 보장소득(기본소득 또는 음소득세)의 도입을 촉구하는 경제학자 1,200명의 성명서 발표를 주도하였다.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제안한 정책이다. 제임스 토빈은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을 만들기까지 했다.
케인즈의 제자인 제임스 미드(James Meade)는 기본소득 네트워크를 창립하여 현대 기본소득 운동의 기초를 놓았다. 인공지능 교과서에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소개되는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가장 급진적인 주장을 하였다. 그는 모든 소득은 지식이라는 공유부를 활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70%의 세율로 과세해서 그 중 절반(35%)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고 제안하였다. 거시경제학 교과서에 빠짐없이 소개되는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는 노동유인이 작고 포착률이 낮은 선별소득보장 대신 과세대상이 되는 기본소득의 지급을 제안하였다.
뷰캐넌, 기본소득으로 조세 저항 극복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적으로 선진국이고, 코로나 대응에서 보았듯이 행정 능력이 뛰어난 나라이다. 그러나 복지 측면에서 보면, 복지비 지출 비중이 OECD 최하위권에 속하는 복지 개도국이다. 자살률과 노인빈곤률 지표를 보면 복지 후진국이라고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하루빨리 복지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이면서도 복지 선진국이 되지 못한 데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낮은 신뢰 - 낮은 조세 - 낮은 복지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주 낮다. 자기 세금이 올바른 데 쓰이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을 싫어한다. 세금을 적게 걷다보니 국민들이 체감할 만한 수준으로 복지를 확대할 수 없다.
기본소득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공공경제학 분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은 정률(비례세)로 걷어서 정액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demogrant)이 미국 헌법의 이념인 일반 복지(general welfare)에 잘 들어맞는 제도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일반성 있는 기본소득을 위하여 큰 액수의 세금을 걷는 것이 일반성 없는 복지를 위하여 작은 세금을 걷는 것보다 훨씬 용이하다고 주장하였다. "시민들은 일반 복지를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에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부과되는 높은 세율의 강제적인 조세를 참아 낼 수 있다. … 그러나 시민들은 변화하는 정치 연합이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여 특정한 집단의 특혜적인 편익을 위해 다른 집단을 착취하는 것을 보면 복지 국가에 대한 지지를 매우 빨리 철회할 것이다."(뷰캐넌, "민주주의가 일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가?")
뷰캐넌의 이런 통찰은 우리나라의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을 때 시민들의 43%는 "내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고 믿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세금 관련 신뢰도 질문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한겨레 21, 2020. 6. 12)
경기도에서는 기본소득이 과연 낮은 신뢰 - 낮은 조세 - 낮은 복지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 2차례에 걸쳐서 숙의 토론(공론화 조사)을 실시한 적이 있다. 숙의 토론을 거치고 나니 기본소득 목적 소득세에 대해서는 찬성률이 43% → 64%, 토지세에 대해서는 39%→ 67%, 탄소세에 대해서는 58% → 82%로 늘어났다. 합리적 토론과 숙의를 거치면 기본소득 목적 과세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루카스와 사전트, 당신들마저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루카스(Robert Lucas)와 사전트(Thomas Sargent)까지도 기본소득을 도입을 촉구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2019년 1월, 28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5명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전임 의장, 4명의 연방준비위원회 전임 의장은 3,589명의 경제학자들의 서명을 받아, 탄소배당(carbon dividend)을 촉구하는 경제학자들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성명서의 내용은 탄소중립과 관련된 복잡한 논쟁과 수많은 논문을 종합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성명서 전체와 발기인 명단은 부록으로 첨부).
성명서 첫번째 조항은 탄소세의 효율성과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탄소세는 필요한 규모와 속도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가장 비용효율적인 수단이다. 잘 알려진 시장실패를 시정함으로써, 탄소세는 저탄소 미래를 향해 경제 행위자를 조종하기 위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이용하는 강력한 가격 신호를 보낼 것이다." 탄소세 없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재고해야 할 것이다.
탄소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치적 저항 때문에 도입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다면 다섯번째 조항에 주목해야 한다. "상승하는 탄소세의 공정성과 정치적 존속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수입은 동일한 금액으로 모든 미국 시민에게 직접 되돌려주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미국 가정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지급하는 것보다 탄소 배당을 더 많이 받음으로써 재정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다."
탄소세의 정치적 저항은 탄소세 수입 전체를 기본소득으로 되돌려줌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탄소세와 탄소기본소득을 결합하면, 탄소중립도 달성하고 정치적 지지도 잃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탄소 가격 상승보다 더 많은 금액의 탄소배당을 받음으로써 재정적으로 이익을 얻게 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에게 배워야 할 것
탄소세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행위를 교정하기 위한 교정과세이다. 탄소중립이 목표이고 탄소세라는 교정과세는 그 수단이다. 기본소득은 교정과세의 정치적 저항을 극복하는 보조수단이다.
똑같은 방법이 부동산 문제 해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부동산 가격을 하향 안정화시키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토지보유세이다. 그러나 토지보유세는 정치적 저항이 크다. 이 때 토지 보유세 수입 전체를 토지배당으로 나누어 주면 대부분의 가구가 토지보유세를 내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에 정치적 저항이 줄어든다.
부동산 불평등 축소가 정책 목표이고, 토지 보유세라는 교정과세는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다. 기본소득은 교정과세의 정치적 저항을 극복하는 보조수단이다. 교정과세와 기본소득을 묶음으로써 경제개혁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본소득 논쟁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는데, 약에 독성이 있어서 약을 쓰면 병은 낫지만 약의 독성 때문에 죽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실력 없는 의사는 환자에게 병으로 죽을 건지 약으로 죽을 건지 선택하라고 할 것이다. 실력 있는 의사라면 약의 독성을 중화시키는 또 다른 약을 찾아내서 두 약을 한꺼번에 처방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라는 병이 있을 때 병을 방치하면 경제가 망하고 보유세라는 약을 처방해면 정치가 망한다고 가정해 보자. 경제를 망하게 할지 정치를 망하게 할지 고민하는 정치 세력은 무능한 정치 세력이다. 보유세와 토지 기본소득이라는 두 가지 약을 함께 써서 경제도 살리고 정치도 살리는 것이 유능한 정치 세력이다.
야당에 거는 기대
최근 여당의 이재명 지사에 이어서 야당에서도 기본소득을 제1정책으로 정하고, 오세훈 시장이 안심소득을, 유승민 의원이 공정소득을 공약으로 내걸어서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그리고 공정성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준석 대표가 선출되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다만 이준석 대표가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형 토지세와 기본소득형 탄소세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여서 매우 유감이다. 기본소득형 토지세와 기본소득형 탄소세는 단순한 소득보장이 목표가 아니다. 경제개혁이 주된 목표이다. 지구를 살리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지구를 살리는 것이 우리를 살리는 일이다.
해적질이 수익성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는 가장 뛰어난 인재가 해적이 된다. 부동산 투기를 막지 못하면 인재가 투기꾼이 되어 우리 경제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면 우리 후속 세대의 상당수는 기대 수명을 채울 수 없게 된다. 탄소국경세가 곧 도입될 가능성이 큰데 우리 기업은 수출길도 막히게 된다. 두 가지 경제 개혁 모두 교정과세가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이준석 대표가 교정과세와 기본소득을 결합시키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성명서를 다시 한번 읽고 생각을 바꾼다면 우리 나라의 미래가 무척 밝아질 것이다.
부록: 경제학자들의 탄소배당(Carbon Dividends)에 관한 성명
지구 기후변화는 즉각적인 국가 행동을 요구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건전한 경제 원칙에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정책 권고안에 동참한다.
I. 탄소세는 필요한 규모와 속도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가장 비용효율적인 수단이다. 잘 알려진 시장실패를 시정함으로써, 탄소세는 저탄소 미래를 향해 경제 행위자를 조종하기 위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이용하는 강력한 가격 신호를 보낼 것이다.
II. 탄소세는 배출 감축 목표가 충족될 때까지 매년 증가해야 하며, 정부의 규모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수입에 중립적이어야 한다. 탄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기술 혁신과 대규모 기반 시설 개발이 촉진될 것이다. 또한 탄소효율적인 제품 및 서비스의 확산을 가속화할 것이다.
III. 충분히 견고하고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탄소세는 덜 효율적인 다양한 탄소 규제에 대한 필요성을 대체할 것이다. 성가신 규제를 가격신호로 대체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기업이 청정 에너지 대안에 장기 투자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규제 확신을 제공할 것이다.
IV. 탄소 누출을 방지하고 미국의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 탄소 조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글로벌 경쟁사보다 더 에너지 효율적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 또한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탄소 가격 정책을 채택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창출할 것이다.
V. 상승하는 탄소세의 공정성과 정치적 존속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수입은 동일한 금액으로 모든 미국 시민에게 직접 되돌려주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미국 가정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지급하는 것보다 "탄소 배당"을 더 많이 받음으로써 재정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다.
초기 서명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George Akerlof(Nobel Laureate Economist), Robert Aumann(Nobel Laureate Economist), Martin Baily(Former Chair, CEA), Ben Bernanke(Former Chair, Federal Reserve), Former Chair, CEA), Michael Boskin(Former Chair, CEA), Angus Deaton(Nobel Laureate Economist), Peter Diamond(Nobel Laureate Economist), Robert Engle(Nobel Laureate Economist), Eugene Fama(Nobel Laureate Economist), Martin Feldstein(Former Chair, CEA), Jason Furman(Former Chair, CEA), Austan Goolsbee(Former Chair, CEA), Alan Greenspan(Former Chair, Federal Reserve), Former Chair, CEA), Lars Peter Hansen(Nobel Laureate Economist), Oliver Hart(Nobel Laureate Economist), Bengt Holmström(Nobel Laureate Economist), Glenn Hubbard(Former Chair, CEA), Daniel Kahneman(Nobel Laureate Economist), Alan Krueger(Former Chair, CEA), Finn Kydland(Nobel Laureate Economist), Edward Lazear(Former Chair, CEA), Robert Lucas(Nobel Laureate Economist), N. Gregory Mankiw(Former Chair, CEA), Eric Maskin(Nobel Laureate Economist), Daniel McFadden(Nobel Laureate Economist), Robert Merton(Nobel Laureate Economist), Roger Myerson(Nobel Laureate Economist), Edmund Phelps(Nobel Laureate Economist), Christina Romer(Former Chair, CEA), Harvey Rosen(Former Chair, CEA), Alvin Roth(Nobel Laureate Economist), Thomas Sargent(Nobel Laureate Economist), Myron Scholes(Nobel Laureate Economist), Amartya Sen(Nobel Laureate Economist), William Sharpe(Nobel Laureate Economist), Robert Shiller(Nobel Laureate Economist), George Shultz(Former Treasury Secretary(Christopher Sims(Nobel Laureate Economist), Robert Solow(Nobel Laureate Economist), Michael Spence(Nobel Laureate Economist), Lawrence Summers(Former Treasury Secretary), Richard Thaler(Nobel Laureate Economist), Laura Tyson(Former Chair, CEA), Paul Volcker(Former Chair, Federal Reserve), Janet Yellen(Former Chair, Federal Reserve. Former Chair, C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