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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⑫-1]‘형제의난’ 2개로 쪼개진 금호그룹...4명의 후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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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참여 4가계, 형제 공동경영합의서 작성
창업주 장남 별세 후 합의서 ‘유명무실’해져
금호석화, 2009년 계열분리 추진···2015년 완성
박세창, 경영전면···박준경·주형 남매 승계 본격화
범(凡)금호가는 총 4명의 3세 후계자를 두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세창 사장과 박세진 상무, 금호석유화학그룹은 박준경 부사장과 박주형 전무다.
두 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과 속도는 사뭇 결이 다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전 회장이 실질적으로 퇴임한 만큼, 박세창 사장이 경영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다. 경영참여 기간이 짧은 박세진 상무가 오빠를 제치고 회장에 오를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반면 금호석화그룹은 3세경영이 안착하기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시각이 나온다. 박찬구 회장이 미등기 임원이지만, 여전히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택시 2대에서 재계 7위로…깨진 ‘형제경영’ = 금호그룹의 모태는 ‘광주택시’다.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는 1946년 해방 직후 중고 택시 2대로 운수업에 뛰어들었고, 2년 뒤인 1948년 버스업으로 사업을 넓힌다.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한 금호그룹은 1960년대 들어 타이어와 건설사업에 진출했다. 타이어 원료 공급을 위한 석유화학업은 물론, 항공업에도 진출하며 한때 재계 7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금호그룹은 창업주가 1984년 별세한 이후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총수에 올랐다. 박성용 명예회장은 약 12년간 회사를 이끌었고, 1996년 바로 밑동생인 고 박정구 3대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하지만 박정구 3대 회장은 6년 뒤인 2002년 지병인 폐암이 악화되면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이에 박성용 명예회장은 셋째동생인 박삼구 전 회장과 넷째동생 박찬구 회장에게 형제공동경영합의서를 쓰도록 설득했다.
경영에 참여하는 4가계가 모두 동의한 합의서의 골자는 ‘65세 정년’과 ‘10년 임기’, ‘회장은 4가계 합의로 추대’, ‘동등한 지분율’ 등이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일종의 장치를 걸어둔 셈이다.
창업주에게는 3명의 딸도 있다. 하지만 ‘여성은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엄격한 유교적 가풍에 따라 경영에서 배제됐다. 막내아들인 박종구 교수는 일찌감치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공동경영합의서는 박성용 명예회장이 2005년 별세한 직후부터 2008년까지 수차례 수정된다. 65세 정년과 10년 임기 조항은 삭제됐고, 4가계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다수결과 연장자 의견을 따르도록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또 그룹 분할을 금지하고, 합의서 위반에 따른 보상 조항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전 회장이 자신의 장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박삼구 전 회장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큰 불만을 품었고, 2009년부터 계열분리를 추진한다.
박찬구 회장은 치열한 법정다툼 끝에 2015년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 분리를 최종 마무리 지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항공과 건설, 타이어, 고속, 리조트 등을, 금호석화그룹은 화학 관련 모든 계열사를 맡았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무리한 차입금으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하며 재무상태가 악화됐고, 결국 재매각했다. 이후 금호타이어에 이어 아시아나항공, 금호리조트까지 내놓으면서 그룹 재건의 꿈은 실현하지 못했다.
반면 금호석화그룹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의 내실경영으로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갖췄고, 부채비율을 크게 낮췄다. 특히 금호리조트를 품에 안으며 신성장동력도 확보하는 동시에 금호가 마지막 유산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세창, 차기 회장 지위…박준경, 사촌 제압 후 승계 속도 = 금호그룹이 분리된 덕분에 3세들의 후계 구도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단순하게 박삼구 전 회장의 자녀들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물려받고, 박찬구 회장의 자녀들이 금호석화그룹을 나눠받는 것이다.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재영씨는 그룹 계열사 관련 지분을 모두 처분하며 경영 참여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박정구 3대회장의 아들 박철완 전 금호석화 상무는 올 초 경영에서 배제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사실상 박세창 사장이 차기 회장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박삼구 전 회장은 2019년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감사의견 한정 사태에 따른 책임을 지기 위해 경영 퇴진했고, 이를 기점으로 박세창 사장의 영향력은 크게 강화됐다.
박세창 사장은 부친을 대신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주도했다. 지난해 말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결정되면서 실질 지주사인 금호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그룹 컨트롤타워격인 전략경영실을 해체한 것은 금호그룹의 재탄생 의지를 공고히 밝힌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박세창 사장의 동생 박세진 상무는 2018년 금호리조트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지난 4월 금호리조트가 금호석화그룹으로 매각되자 금호익스프레스로 자리를 옮겼다.
금호석화그룹은 박찬구 회장이 미등기 임원이지만, 회장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박철완 전 상무는 박찬구 회장 자녀인 박준경 부사장, 박주형 전무와 함께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임원인사 이후 후계 구도에서 배제됐다는 판단한 박철완 전 상무는 올해 주주제안으로 분쟁에 나섰다.
결과는 박찬구 회장의 승리. 박철완 전 상무가 회사를 떠나면서 박준경 부사장과 박주형 전무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오빠인 박준경 부사장이 차기 경영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속단하긴 이르다. 박찬구 회장은 아들과 딸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을 우선하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 금호가 ‘금녀’(禁女) 전통을 깨고 박주형 전무를 회사로 불러들인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당분간 남매간 경쟁구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박주형 전무를 후계권에서 떨어트릴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세정 기자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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