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우 위하준이 만든 ‘미드나이트’ 속 ‘악몽’
“배우로서 ‘도식’ 같은 인물과 만나는 건 축복이라 생각했다”“난 똑똑한 배우 아냐. 내가 하고 싶은 도전 풀어가는 배우”
입력 : 2021-06-30 12: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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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 2021-06-30 12:26:1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유난히 커 보이는 눈이 희번덕거렸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표정을 바꿨다. 먹이를 노리는 야수처럼 눈빛은 살기가 가득했다. 이런 눈빛이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 골목길에서 날 노려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영화 ‘미드나이트’에서 배우 위하준은 이런 눈빛으로 스크린을 쏘아봤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가진 동물이 아니었다. 그저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이었다. 하지만 딱히 짐승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느낌이 강했다. ‘미드나이트’ 속 위하준은 본능보단 감정에 충실했다. 그 감정이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감정으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위하준은 그런 짐승도 인간도 아닌 무엇을 연기했다. 위하준이 연기한 ‘도식’은 그런 ‘무엇’이었다. 한국 영화 속에서 특징적이랄 수 있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손에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위하준이 연기한 ‘도식’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반대로 위하준이 연기한 ‘도식’은 정말 끔찍한 인물이었다. 영화 속 인물이란 게 정말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위하준은 ‘도식’과의 만남을 평생의 꿈을 이룬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캐릭터와 만나길 고대했던 배우 위하준과의 만남은 반대로 너무도 즐거웠다. 이런 배우가 이런 인물을 연기했단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드라마에선 지금까지 달콤하고 설렘 가득한 모습만을 보여줬던 위하준이다. 하지만 반대로 영화에선 섬뜩하고 서늘한 인물만 도맡아왔다. 특히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을 보면 한결 같았다. 그런 배역 가운데 이번 ‘미드나이트’ 속 ‘도식’은 거의 정점에 달한 캐릭터다. 기존 한국영화 속 사이코패스 캐릭터와도 결 자체가 다르다.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악마 같은 인물이 바로 위하준이 연기한 ‘도식’이다.
“국내 영화에서 너무도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도식’과 비슷한 역할을 많이 해오셨잖아요. 제가 잘못하면 단순하게 흉내만 내고 따라만 하는 게 될 것 같았어요. 여러 선배님들이 하셨던 역할, 하정우 선배님 최민식 선배님의 연기를 많이 참고했고 또 감독님과 상의해서 도식을 만들어 갔죠. 사람을 속이는 데 더 능숙하고 반대로 더 평범해 보이고 어떤 면에선 아주 예민한 모습을 드러내려 노력했어요.”
그는 이런 끔찍한 인간 ‘도식’을 만난 것에 대해 ‘꿈을 이뤘다’고 표현했다. 유독 스크린에선 쎈 캐릭터만 맡아왔다. 사실 악역에 가까운 역은 ‘걸캅스’가 거의 유일했다. 하지만 ‘걸캅스’에서 워낙 나쁜 놈으로 나왔기에 더 강렬하고 더 쎈 인물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남자 배우라면 지독한 악역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있는 것 아니냐’고 웃는다.
“(웃음) 정말 ‘미드나이트’ 출연 제안을 받았는데 ‘도식’이란 인물을 보고 ‘드디어 꿈이 이뤄졌다’라며 ‘아싸’ 했죠. 하하하. 악역에 대한 매력이요? 절대적 우월함이랄까. ‘넌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란 감정으로 상대를 조종하는 듯한 모습이 작품 속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요. 배우적으론 사실 도식 같은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을 한 번 만나보는 게 진짜 축복이죠. 정말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나쁜 모습의 총집합 같은 인물이에요.”
감정적으론 정말 자신이 배우 인생에서 무조건 꼭 만나보고 싶었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기에 즐겁고 기뻤다. 하지만 반대로 육체적으론 보통 일이 아니었을 듯싶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연기하기 위해, 그리고 그 인물의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10kg가 넘는 체중 감량을 선택했다. 물론 그는 배우란 직업적 특성상 체중 감량에 대한 고충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단다. ‘체중 감량’이 대단한 것으로 비춰지는 게 오히려 쑥스럽다며 손사래다.
“대충 13kg 정도 뺀 것 같아요. 사실 ‘미드나이트’ 시작 전에 평소보다 몸집이 많이 불어나 있던 상태였어요. 그때가 아마 76kg 정도였는데 외형적으로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7kg 정도를 뺐죠. 그리고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더 살이 빠져서 촬영 중간 이후부턴 처음 대비 13kg 정도 빠졌었죠. 시나리오 처음 볼 때부터 ‘도식’의 이미지가 제 머릿속에도 확고했어요. 이건 무조건 살을 빼야 한다 싶었죠(웃음). 뭐 살 빼는 거야 배우라면 당연한 거니(웃음)”
언론 시사회 이후 ‘미드나이트’를 두고 ‘연골나이트’란 말이 나왔다. 극중 위하준과 그의 상대역 진기주의 추격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격렬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서 이 정도의 격한 추격 장면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이후 처음일 듯싶다. 골목골목을 이 잡듯이 휘 집고 뛰어다니는 통에 위하준과 진기주의 무릎이 성치 않았을 정도였단 뒷얘기가 있을 정도였으니.
“정말 뛰고 뛰고 뛰다가 토할 정도였어요(웃음). 기주 배우랑 우리 영화를 ‘연골나이트’라고 불렀으니. 하하하. 지금도 무릎이 좀 안 좋아요. 정말 다행스럽게 큰 부상 없이 촬영을 마쳤어요. 실제로 그 장소가 재개발지역이라서 사람들이 안 사는 동네였거든요. 정말 그 공간에 들어가니 제가 진짜로 ‘도식’이 된 기분이었고 골목을 뛰어 다니는 데 진짜 기분 이상하더라고요.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는데 그 공간이 배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참고로 제가 완도 지역 달리기 선수였습니다. 하하하. 그 덕을 좀 많이 봤죠(웃음)”
너무 강한 배역이라 걱정이 되진 않았을까. 이제 출발선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된 신인 연기자로서 너무 강렬한 배역은 자칫 추후 출연작에 대한 영향까지 미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드나이트’ 속 ‘도식’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하고 악한 인물이다. 다양한 배역과 다양한 작품에서 활동해야 할 위하준의 경력에 흠결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하준은 단호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전 똑똑한 배우는 아닌 것 같아요. 이걸 하면 내가 어떤 리스크가 있고 내가 또 어떤 얻을 것을 가져갈지 계산을 한다고 하던데. 전 그런 게 안 되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아직은 하지 못할 배역’만 보여요. 주변 친구들에게도 의견을 구하고 회사 입장도 들어보지만 결과적으론 제가 하고 싶은 역에 끌리는 편이에요. 전 그냥 내가 끌리는 도전을 하고 그 도전을 풀어가는 배우가 되는 게 ‘위하준’이란 배우가 할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게 저랑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