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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제작자와 질긴 인연→난소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 파란만장 인생사 ('대화의 희열3') [MD리뷰]
21-07-02 06:00
1일 밤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3'에는 양희은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양희은은 송창식과의 첫 만남에 대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윤형주 선배가 영어회화 클럽 선배였다. 클럽 창립일에 선배를 초청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창식이 형과 같이 오신 거다. 그날 내가 후배 대표로 노래를 하니까 두 선배가 기타로 반주를 해줬다. 나중에 다른 후배를 통해 연락이 왔는데, 내게 트윈폴리오 콘서트 티켓을 전해달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에 유희열은 "송창식 씨에게 장난을 심하게 치셨던데"라고 말을 건넸다. 양희은은 "대학교 졸업식 날 결혼식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창식이 형이 너무 바빠서 못 올 것 같았다. 낮에는 또 안 일어나니까. 그래서 결혼식이라고 하면 올 것 같더라. 축가를 불러주려고 기타를 들고 왔다. 축의금도 들고 왔더라"고 해 폭소케했다.
양희은은 제작자 킹레코드 박 사장과의 질긴 인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별명이 '킹박'이었다. 킹레코드사 박 사장이었다. 불도그 같은 외모에 무식하지만 촉이 좋았다. 제 노래를 들은 라디오 PD들이 '쟤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아?'라고 했고, 그렇게 주선을 해서 킹박을 만났다. 킹박이 나를 쳐다보면서 '김추자 같은 가수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신부님에게 빌린 250만 원을 갚기 위해 계약금 조로 250만 원을 달라고 했다. 그 돈으로 신부님께 빌린 돈을 갚았다. 그리고 그 돈이 볼모가 되어 1978년까지 돈을 받지 못하고 녹음했다"고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를 들은 유희열은 "(양희은이) 1970년대에만 앨범을 11장 발매했다. 앨범이 다 잘 됐는데, 액수로 따지면 어마어마할 거다. 그 시절을 감안하더라도 250만 원은 충분히 넘고도 남을 수익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양희은은 "킹박에게 대들었더니 '곧 큰돈 들어오니 보너스를 챙겨주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안 나타나고 사라졌다"고 했다. 유희열은 "킹박이 레코드사를 닫았다. 그리고 골프장, 귤 농장을 처분한 뒤 미국으로 떴다"며 "(양희은이) 1981년 뉴욕에서 우연히 킹박을 마주쳤다더라"라고 물었다.
양희은은 "킹박이 '누가 콘서트하면 돈 준다는데 할래?'라더라. 그래서 당신 같은 사람은 보고 싶지 않으니 꺼지라고 했다.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싸웠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암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있으면서 보니 '양희은 석 달 시한부 인생',' 양희은 LP 재고 정리'라고 플래카드가 걸렸더라"라고 말했다. 킹박이 아픈 양희은을 이용해 장사를 했던 것.
이에 킹박에게 연락했다는 양희은은 "'내가 태어나서 한 일은 당신의 배 둘레 두껍게 해 준 것밖에 없다. 그런데 청계천에 플래카드를 걸고 장사를 한다며?'라고 했다. 그러니까 킹박이 내게 '새 노래를 내야지'라더라. 그렇게 또 만나게 됐다. '김희갑 선생 곡을 불러보라고 하더라. 그 노래가 바로 '하얀 목련'이다. 저는 그 사람(킹박) 하나로 시작해 그 사람으로 끝냈다"고 전했다.
양희은이 킹박과 오랜 시간 함께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양희은은 "그 당시 모든 음반게는 가수의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가수한테 돈이 되는 것은 노래의 품을 팔고 월급을 받는 것이었다. 가수들 입장에서 (당시 제작자들은) 다 도둑이었다. 킹박은 스튜디오 사용 시간 무제한, 편곡 횟수 무제한, 노래 선곡도 내 마음이었다. 가수로서의 자유를 부여했다. 대신 돈은 안 준다"고 밝혔다.
이후 양희은은 킹박의 병간호까지 했다고. 그는 "애정도 없고 사실 밉지도 않다. 그냥 도둑놈이다. 귀여운 도둑이다"라고 해 웃음을 안겼다. 그러면서 "사랑하거나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냥 귀엽다. 어떻게 그렇게 얽혔다. 킹박과의 만남이 막강한 추진력을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양희은은 30살에 난소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병원에서 일하던 선배가 갑자기 검사를 권유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더라. 말기 암 환자의 전형적인 얼굴 색깔이라더라. 난소암 말기였다. 수술하면서 하루에 한 7~8kg이 빠졌다. 의사 말로는 9개월 아기만한 크기의 종양이라더라"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양희은은 "내가 병원에서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기니 혼이 떠나가더라. 항생제 부작용으로 사경을 헤맸다. 그 밤을 넘기고 며칠 더 있다가 퇴원하는데 의사가 할 얘기가 있다더라.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함께 싸워나가자'고 했는데 내가 '싫다. 내버려둬라'고 했다. 내가 살고 싶다, 죽고 싶다고 해서 내 원대로 되지 않더라"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퇴원 이후 의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양희은. 그는 "의사 선생님이 화가 나서 연예인 협회에 내 전화번호를 알아본 뒤 '너 같은 환자를 처음 본다'고 하셨다. 그 후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그분을 만난 것도 또 다른 인연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양희은은 암 선고를 받은 지 7년 뒤, 종양이 발견돼 두 번째 수술을 받았고,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양희은은 "씁쓸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이런 것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생각이었다. 육아, 부모 노릇에서 자유로워진 거 그게 되게 기분이 좋았다. 왜 그랬을까.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고 전했다.
[사진 = KBS 2TV 방송 화면]
정지현 기자 windfa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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