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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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지난 8일 검찰총장 부속실 소속 A 수사관의 대검찰청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하기 전 검찰이 이미 같은 사건으로 A 수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관련 자료를 공수처에 이첩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법조계에선 공수처 출범 이후 우려했던 수사기관 사이의 중복 수사가 현실화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5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윤갑근 전 고검장과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 이규원 대전지검 부부장검사(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검사) 등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 검사 등의 다른 범죄 혐의(허위공문서작성·공무상비밀누설 등)를 인지하고 수사 폭을 넓혔다고 한다. 이 검사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性) 접대 사건을 재조사하던 2018년 12월~2019년 1월경 별장 주인이었던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6차례 면담하고 그 내용을 허위로 작성한 뒤 언론에 유출한 혐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규원 검사의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에 대한 수사를 25일 현재 131일째 수사 중이다. 사진은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 21일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는 모습. 연합뉴스 검찰은 이후 이 검사가 윤씨를 면담할 때 배석했던 A 수사관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병행했다고 한다. A 수사관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물론,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A 수사관을 소환해 대면조사도 벌였다고 한다. 다만, 검찰은 지난 3월 해당 사건을 공수처로 넘겼다. 공수처 외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하면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25조 2항에 따라서다. 공수처는 이 사건을 ‘공제 3호’로 정식 입건해 수사를 이어 왔다.
검찰이 넘긴 수사 기록을 두 달이 넘도록 검토하던 공수처 수사3부(부장 최석규)는 최근 A 수사관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A 수사관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이후 공수처가 A 수사관이 근무하던 대검 내 검찰총장 부속실을 압수수색했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이미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소환 통보에 불응했단 이유로 ‘망신주기’ ‘보여주기’ 식 압수수색을 한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8일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및 유출 사건과 관련, 검찰총장 부속실 소속 A 수사관의 대검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사진은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한 관계자가 들어서는 모습. 뉴스1 A 수사관에 대한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는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한겨레신문의 ‘윤석열 별장 성 접대’ 오보(2019년 10월)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가 A 수사관에 대해 압수수색한 게 처음이다. 당시 수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신에 대한 별장 접대 의혹을 제기한 한겨레신문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당시엔 다른 사건(명예훼손)이었지만,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수사하다 공수처 수사3부가 넘겨받은 사건은 사실상 같은 사건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선 “같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다른 혐의 인지 없이 중복으로 압수수색한 건 공수처가 표방하는 인권 친화적 수사에 배치된다”(평검사)는 비판과, “같은 사건이라도 수사를 하다 상당한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엔 중복 압수수색이 문제가 될 게 없다”(부장검사)는 반론이 혼재한다. 이에 대해 공수처 관계자는 “참고인 조사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조사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