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경제학자인 우석훈 성결대 교수는 ‘36세 제1야당 당수’의 파격적인 등장이 우연보다 필연에 가까웠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공희준 작가 등 12명의 논객과 함께 펴낸 신간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따르르르릉-이준석 전후사의 인식』(오픈하우스)에서도 이같은 인식을 드러내며 “2030세대와 보수정당의 결합이 굳건해질 경우, 향후 한국 정치 지형 자체가 변화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23일 6명의 저자에게 이 대표 당선이 한국 정치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이준석 현상? 돌풍이 아니라 계절풍"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가 13일 오전 따릉이를 타고 국회의사당역에서 국회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대표실 한 관계자는 “이 대표는 평소에도 따릉이를 애용했으며, 당 대표 차량은 있으나 운전 기사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오종택 기자 정치평론가 공희준 작가 역시 우 교수처럼 “
한 번 불고 그치는 돌풍이 아니라 꾸준히 부는 계절풍”에 이 대표의 당선을 비유했다. 2030세대 저변에서 부글거리던 ‘마그마’(세대교체론)가 이준석이란 ‘분화구’를 통해 터진 현상이란 시각이다. 공 작가는 통화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랩과 힙합은 당대의 대세가 됐을 것이고, ‘소녀시대’가 없었더라도 걸그룹이 등장했을 것”이라며 수도권 2030의 정치적 입맛에 맞는 새로운 정치상품으로 이 대표를 규정했다.
그는 특히 ‘수도권·2030’을 이 대표 정체성의 요체로 꼽았다. “영·호남이 주도하던 기존 문법과 완전히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가 지난달 4일 대구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탄핵은 정당했다”고 한 결정적 장면을 두고도, “수도권 정체성이 강한 이 대표에게는 처음부터 '탄핵의 강'은 없었다”고 공 작가는 진단했다. 공 작가는 “이 대표는 ‘탄핵의 강’과 마찬가지로 민주화·산업화 같은 거대서사, 역사적 기획의 의무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으로 내다봤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도덕과 명분의 정치가 끝난 것”이란 해석을 보탰다. 장 교수는 통화에서 “지금의 여권은 민주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야권은 성장주의·시장주의를 일종의 도덕률로 내세우며 정치를 해왔다”며 “반면 이 대표는 큰 담론이나 명분을 갖고 구체적인 정책을 정당화하는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공직후보자 자격시험’에 대해서도 “기성세대라면 공정·경쟁 같은 추상적 단어를 강조하며 싸웠겠지만, 이준석은 공정 논란이 있으면 ‘그러지 말고 그냥 시험보자’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12명의 논객들이 분석한 신간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따르르르릉-이준석 전후사의 인식』(오픈하우스). 오픈하우스 제공 우석훈 교수는 이런 독특한 정체성을 “멀쩡한 보수의 등장”이라고 규정했다. “
기존 보수정당에선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반공보수, 대기업의 특권을 옹호했던 경제보수가 두 축을 이뤘는데, 다른 흐름이 만들어졌다.
청년들이 ‘국민의힘을 찍기에는 좀…’이라고 할 요소가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준석의 ‘능력주의’(meritocracy)가 승자독식을 부추긴다고 비판받는데 대해서도 “지금은 능력도 뭣도 아닌 적당히 발탁하는게 문제가 되는 상황이니 주목을 받는게 당연하다. 청와대 청년비서관 발탁 문제도 그런 경우(발탁)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2030과 보수정당의 결합이 굳건해질 경우, “낙동강 벨트를 향한
민주당 동진(東進)의 시대는 끝났고, 국민의힘이 호남 2030 호남 표심을 공략하는 서진(西進)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며 기존 정치구도에 변화가 올걸로 봤다. 우 교수는 “2030이 갖는 불만은 수도권과 지방이 큰 차이가 없다. 이 대표가 취임 직후 꾸준히 호남을 찾은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전략적 움직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능력주의 승자독식 논란, 넘어설 수 있을까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2일 국회에서 공직후보자 자격시험을 주관할 역량강화 태스크포스(TF) 김상훈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멀쩡한 보수’라는 우호적 평가 한편에서는, 출범 한달이 넘은 이준석호를 바라보는 기대반·걱정반의 시선도 상당하다. 공직후보자 자격시험으로 대표되는 이준석의 능력주의, 통일부·여성부 폐지론 등 당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요소들도 적지 않아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책을 통해 “이준석의 능력주의(meritocracy)가 공화주의적 공정론보다 자유주의적 경쟁론에 가까워 '진정한 공정'에 미달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 대표의 능력주의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발현돼, 공동체 유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리더십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채 교수는 “
하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정책 없이 무조건 경쟁하라고 해서 통합이 되겠느냐. 오히려 불안감을 부추겨 선동하려는 포퓰리스트를 등장시킬 것”이라며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교정할 부분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냐(보수), 평등이냐(진보)로 단선화된 이념논쟁 속에서 생기는 빈틈, 이를테면
‘공동의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이 대표가
기존 보수정당의 친기업·친재벌 스탠스를 벗어나 친시장·친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지도 관전포인트”라고 말했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정경유착 관행을 연상케 하는 친재벌 대신, 공정경쟁의 수호자로서 친시장주의자를 자처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이 대표가 미국 하버드대 선배 김동관 한화솔루현 대표를 “동관이형”이라 부르는 건 조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이 교수는 국민의힘의 현재 경제 정책에도 깨뜨려야 할 금기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귀족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고 했던 윤희숙 의원의 최근 발언을 거론하며 “일부 맞는 부분도 있지만 민주노총을 깬다고 청년일자리가 확 늘어나진 않는다”고 비판했다. “자영업자로 인력이 과도하게 몰리고, 자본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가 구조화되지 않은 게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 “
야당은 기업 거버넌스 문제 등도 거론을 해야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딱 다문다”며 이 대표가 깨야할 금기로 지적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왼쪽)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둘은 최근 통일부 폐지론을 놓고 SNS에서 설전을 벌였다. 임현동 기자, 뉴스1
탈북자 출신으로 정치컨설턴트 일을 하고 있는 조경일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는 “이 대표의 통일관이 기성세대보다 더 극우적”이라고 비판했다. ‘흡수통일 외에는 대안이 없다. 통일 교육은 북한 주민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이 대표 발언과 통일부 폐지론 등이 주로 비판 대상이다. 조 이사는 “2030세대가 통일에 관심이 없는 게 반영된 주장 같다”며“그렇다면 관심을 갖도록 컨센서스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오히려 단편적 사고로 무관심을 노골화하는데 편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부 폐지 주장으로 불이 붙은 젠더 문제도 향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우석훈 교수는 “한국의 청년들이 공정을 기반으로 한 능력주의 정도에서 머물지, 아니면 좀 더 여성혐오주의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마초형 극우로 분화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