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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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플루트를 들고 있는 김유빈. [사진 목프로덕션]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82)를 비롯해 24K 순금 플루트를 쓰는 연주자가 꽤 된다. 밀도가 높은 금을 통해 화려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순금뿐 아니라 합금, 또는 은으로 된 악기를 놓고 플루티스트들은 고민한다. 소리가 크고 빛나는 금이냐, 깨끗하고 밝은 소리의 은이냐.
플루트 연주자 김유빈, 나무 악기 들고 옛 음악 연주
플루티스트 김유빈(24)은 평소 금으로 된 플루트를 쓰지만, 이번에 나무를 골랐다. 나무 플루트로 다음 달 독주회를 연다. 바흐ㆍ헨델ㆍ쿠프랭 등 17~18세기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려주는 무대다.
플루트는 원래 나무였다. 금속으로 변신한 지금도 ‘목관’ 악기로 분류되는 이유다. 김유빈은 “재질이 금이나 은으로 바뀐 때는 불과 19세기다. 브람스 시대까지도 나무를 썼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나무 악기는 현대 플루트의 원조이자 전신이다.
김유빈은 베를린의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 2016년 19세에 최연소 수석으로 임명되며 주목받았다. 한국에서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떠나 리옹과 파리의 국립 고등음악원을 졸업했다. 옛날 플루트는 프랑스에서 만났다. “부전공을 정해야 해서 옛 악기를 골랐는데 현대 플루트와 완전히 달라 충격적이었다. 리코더처럼 구멍만 뚫려있고, 음정을 바꿀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낯설었다.” 이때 그가 불었던 악기가 플루트의 전신인 트라베르소(traverso). 바흐ㆍ헨델ㆍ텔레만 등 17세기 작곡가들이 특히 사랑했던 나무 플루트다.
평소에는 금으로 된 악기를 쓴다. [사진 목프로덕션]
쨍쨍하고 화려한 플루트와는 거리가 멀다. 김유빈은 바로 그 점에 매료됐다. “따뜻하고 어두운 소리를 내는 악기다. 감정이 보다 직접적이고 깊게 나온다”고 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음량이 작고 음역대도 좁다. 현대 플루트보다 한 옥타브 정도 낮은 음까지만 낸다. 현대의 다른 악기들과 어울리면 소리가 파묻힌다.
김유빈은 “이런 이유 때문에 플루트는 고전, 낭만 시대에 가장 사랑받지 못한 악기가 됐다”며 “모차르트가 플루트를 싫어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트라베르소로 모차르트 음악을 불어보면 작곡가가 요구한 정확한 음정을 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슈베르트ㆍ브람스의 플루트 작품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작곡가들이 플루트를 다시 사랑하기 시작한 때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의 드뷔시ㆍ라벨 정도다. 현대에는 밝고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원하는 작곡가들이 자주 쓴다.
따라서 김유빈이 나무로 소개하는 음악은 플루트가 가장 사랑받던 시대의 작품들이다. “바흐는 트라베르소로 소나타를 6곡이나 썼다. 헨델 등 모든 바로크 작곡가들이 소나타 6곡씩은 기본으로 썼다. 나무 플루트에는 그 시대대에 꼭 맞는 감정이 있다고 본다.” 금속 악기로는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한 음정, 소박한 음색 같은 것을 나무 플루트로 낼 수 있다. 그 당시 작곡가들이 원했던 소리다.
이번 독주회에서 김유빈은 트라베르소를 쓰지는 않는다. 현대 플루트의 음정 시스템과 나무 재질을 결합한 우드 플루트다. 소리는 트라베르소에 가깝고, 운지법은 현대 플루트와 같다. “유럽에는 현대 플루트 연주자 중에도 나무 플루트만 쓰는 사람이 많다. 특히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46년 동안 수석을 맡았던 안드레아스 블라우도 나무 플루트를 썼다.”
김유빈은 “내가 매료됐던 나무 플루트의 소리를 알리고 싶다. 생소하지만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독주회를 위해 고른 독일ㆍ프랑스 작품 외에도 나무 플루트를 위한 음악은 무수히 많다.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공연은 다음 달 2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