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바누아투는 13만 달러(약 1억5000만원)를 내면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제공하는 ‘황금 여권’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시민권을 얻은 이 중에는 북한의 고위 정치인은 물론,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시리아 기업가, 바티칸을 상대로 횡령한 의혹을 받는 이탈리아 사업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보 공개 제도를 이용해 입수한 바누아투 정부 내부 문서를 분석해 시민권을 획득한 이들의 신원 등을 공개했다.
각종 자연재해 등으로 국가 부채가 쌓여가는 상황에서 바누아투 정부는 2017년 황금 여권 제도를 도입했다. 바누아투에 발 한번 들이지 않더라도 돈만 내면 한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바누아투 여권을 갖고 있으면 영국과 유럽연합(EU)을 포함해 130개국 이상에 비자 없이 갈 수 있다. 지난해에만 2200명이 이 제도를 이용해 시민권을 획득했다.
절반이 넘는 1200명이 중국 국적이었고, 나이지리아, 러시아, 레바논, 이란, 리비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출신이 많았다. 미국과 호주 출신이 각각 20명과 6명이었고, 소수의 유럽 국가 출신도 있었다.
가디언은 태평양이 마약 밀수 등의 허브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바누아투의 투자 시민권 제도가 이 지역에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범죄조직 등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범죄 전력 등으로 다른 나라 입국이 불가능한 이들이 바누아투 시민권을 획득한 뒤 이름을 바꾸면 다른 나라에서 이를 걸러낼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바누아투 시민권을 얻은 이 중에는 유엔의 지지를 받는 리비아통합정부(GNA)의 파예즈알사라즈 전 총리 등 각국 제재 대상과 관계가 없거나 범죄 전력이 없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터키에서 수백만 달러의 횡령 스캔들에 연루된 금융업계 거물, 36억 달러(약 4조1000억원) 규모의 가상화폐 강탈 의혹이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형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측근인 기업가, 바티칸을 상대로 횡령한 의혹이 있는 이탈리아 기업가 등 논란의 대상이 된 인물들도 대거 포함됐다.
가디언은 특히 바누아투 시민권 획득자 중 북한 고위 정치인과 아내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중국 여권을 이용해 지난해 바누아투 시민권을 신청했다는 설명이다.
바누아투는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 예멘, 북한 출신의 시민권 신청을 받지 않지만, 5년 이상 이들 나라에서 거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이를 허용하고 있다.
가디언은 지난해 바누아투 정부가 이같은 시민권 판매로 1억1600만 달러(약 13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는 바누아투 정부 수입의 42%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