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시민제안’ 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다. 글 작성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했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웨딩홀에 전화하니, 최소 보증 인원 축소는 불가능하고, 올해 안에 일정 조율이 된다고 한다. 조율 가능한 날짜를 물으니 대체 공휴일과 크리스마스 총 3일이다. 월요일과 크리스마스에 도대체 누가 참석할 수 있느냐.”
12일부터 시작되는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예비부부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새 거리두기 지침의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공연, 전시 박람회와 달리 결혼식에만 기준이 유독 박하다”는 주장이다.
을 중의 을, 예비부부 예비부부들 사이에서는 “결혼식 대신 콘서트를 열면 되는 거냐”는 말이 돌고 있다. 새 거리두기 지침에 따르면 결혼식은 8촌 이내 친족까지 49명만 참석이 가능하지만, 콘서트 등 공연장에는 5000명까지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이번 주말에 열린 청주 미스터트롯 콘서트에는 관람객이 회당 2500명씩 모이는데, 이런 공연장에서 코로나 걸릴 확률이 높겠나, 99명 모이는 결혼식에서 확률이 높겠나”라고 토로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결혼식 새로운 거리두기 세부조항 보완이 필요하다’ 등의 국민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한 청원인은 “새로운 거리두기에서 세부적인 조치가 너무나 빈약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결혼식 거리두기 수정 요청을 봐왔고 청원 동의를 했지만, 결국 단계별 인원 제한만 있고 세부사항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에도 코로나19 확산으로 결혼식 등 행사를 ‘실내 50인’으로 제한하면서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예비부부가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는 “인원은 그대로 허용하되 식사를 금지하면 되는 것 아니냐”“자주 연락하는 친척들 다 더해도 49명이 안 된다. 친족 제한이 아닌 친구ㆍ동료 포함 49명으로 정하는 게 낫다”며 세부 조정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지난 8일 올라온 '결혼식 새로운 거리두기 세부조항 보완이 필요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1일 4시 20분 기준 3600여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위약금 면제 약관 개정안 강제력 없어 단계 상향으로 결혼식이 취소될 때, 웨딩 업체가 위약금을 요구하지 못하게 ‘긴급 민생법’을 제정해달라는 의견도 있다. 웨딩홀 측이 ‘친족만 진행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고, 사진ㆍ영상 업체는 ‘처음 정한 날짜 이외 다른 날은 추가금이 붙는다’고 따지면 예비부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청원인은 “단계에 맞춰 결혼식이 취소되거나 미뤄질 때마다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예식장은 자체적으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거리두기 4단계로 식을 취소ㆍ연기하면 위약금을 없애거나 보증 인원을 제한 인원인 49명으로 낮춰 주고, 대관료를 저렴하게 조정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극소수 예식장의 사례일 뿐이다.
4년째 웨딩플래너로 일하는 B씨는 “1년 반가량 코로나 사태를 지켜봐 왔지만, 거리두기 단계에 따른 정부의 ‘단순 인원 제한’에 일방적인 피해를 보는 건 예비부부뿐”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결혼식 위약금 관련해 권고했지만,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앞서 지난해 9월 결혼식을 연기ㆍ취소할 경우 생기는 위약금을 면제ㆍ감경시키는 등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 및 표준 약관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강제력은 없다.
“정부가 대신 위약금 지불해야”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부 지침과 보상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콘서트를 허용한 건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하게 하고, 함성ㆍ떼창 등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결혼식의 경우 ‘식사’를 제공한다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새는 초대받는 사람들도 식사는 부담스러워 한다”며 “식사를 안 하는 조건으로 99명까지 허가하고, 예식장이 식대에서 손해 보는 부분을 일부 추가로 지불하는 식으로 조율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의 방역 실책으로 인륜지대사를 망쳤으니 정부가 보상해줘야 한다”며 “날짜를 미룰 수 있도록 해주거나, 그렇다고 예식장 측만 손해를 보라고 할 수 없으니 정부가 위약금을 지불해주는 식으로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