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기획
정치인과 논문 표절 의혹
이재명 경기지사가 14일 오전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지사는 “논문은 개인의 사생활이나 직업과 같은 그런 내밀한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될 범죄행위에 가까운 문제”라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치권이 또다시 ‘논문 표절’로 달아올랐다. 야권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가 쓴 2008년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가 관상 프로그램 개발회사 ‘에이치컬쳐테크놀로지’의 사업 홍보자료 등을 베껴 썼다는 의혹과, 2007년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3편이 짜깁기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대개는 정치인 본인의 표절 시비가 불거지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조금 이례적으로 배우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윤 전 총장 쪽은 김씨가 결혼하기 전에 쓴 논문을 여당이 ‘검증 대상’으로 삼았다며 “공당이라면 배우자가 아닌 이재명·정세균·추미애 등 본인의 논문 표절 의혹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역공에 나섰다. 정세균 전 총리의 박사학위 논문, 이재명 경기지사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거론하며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에 현재 여권 대선후보군 가운데 가장 지지율이 높은 이 지사는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논문은 사실 개인의 사생활이나 직업과 같은 그런 내밀한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될 범죄행위에 가까운 문제 아닙니까? 그런 부분은 당연히 검증해야죠.” 김씨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논문 표절이 “범죄행위에 가까운 문제”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윤 전 총장 쪽의 지적처럼 이 지사도 바로 그 “범죄행위에 가까운 문제”와 관련한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가 2005년 제출한 가천대 석사학위 논문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에 2013년 9월 표절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보수 논객 변희재씨가 대표로 있던(현재 대표고문) 산하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이 지사 논문의 “40여페이지 이상에서 표절 혐의가 발견”됐으며 “대필이 강하게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가천대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여는 등 논란이 커진 가운데, 이 지사는 2014년 1월 스스로 석사학위를 반납하겠다는 내용증명을 학교에 보냈다. 그런 뒤 연 기자회견에서 그는 “석사 논문 표절 논란은 변희재씨가 제기했고, 새누리당 성남시장 출마 예정자들이 주축인 단체가 시장 선거를 앞두고 저를 흠집 내려고 가천대에 진상조사와 조치를 요구한 사안”이라며 그해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상대 당의 노림수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추가 출석으로도 대체 가능한 야간특수대학원 석사 논문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국정원이 나서 가천대를 압박하여 논문을 취소하도록 함으로써 논란을 확대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정원 개입설도 제기했다. 그럼에도 학위 반납 의사를 밝힌 것은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라고 못박았다.
“따옴표를 못 친 게 있다”
이후 이 지사는 “논문 쓸 때 책은 다 인용했는데 따옴표를 못 친 게 있다. 인용 표시, 그거 인용 안 했다고 표절했다고 하는 것”이라는 반박을 내놨다. ‘가천대 비하 발언’ 논란을 일으킨 2016년 12월4일 부산 강연에서 그는 “야간특수대학원은 객관식 시험 보면 다 학위를 주는데, 저는 공부를 하러 간 거니까 굳이 논문을 썼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대 졸업했고 사법시험 합격한 변호사인데, 내가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의 석사학위가 필요하겠나”라며 “(그런데도 표절 의혹을 사게 돼) 아, 이거 필요 없으니까 반납, 제 모든 경력에서 지워버렸다”고 강조했다. 표절이 아니라, 공부를 하고 싶어 안 써도 되는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8일 뒤 가천대는 ‘이재명 성남시장 석사학위 논문 관련 입장’이라는 흥미로운 보도자료를 내놓는다. 핵심은 약 넉달 전인 8월23일 열린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시장 논문은 “학칙에 정한 ‘5년 시효’가 지나 부정 여부를 심사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는 내용이다. 이 시장 논문은 2005년에 제출됐고, 표절 의혹은 ‘5년 시효’를 넘긴 2013년에 제기됐으므로 학칙상 표절 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설명 뒤엔 “2005년 그 당시의 특수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의 일반적인 관행과 학문적 성취도 수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손색없는 논문으로 판단한다”는, “해당 논문을 지도한 이영균 교수”의 “공식 입장”이 따라붙는다. “이 논문의 핵심은, 총체적으로 변호사이고 시민단체 리더였던 작성자의 경험과 현장자료 수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2005년 논문심사 당시의 적격판정을 뒤집을 정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형식상 표절 여부를 밝히진 않았으나, ‘문제없다’는 뜻을 논문 지도교수의 ‘보증’을 근거로 밝힌 것이다.
당시 이 보도자료가 게시된 페이스북 ‘가천대학교 대나무숲’에는 “논문 지도한 교수가 논문이 문제없다고 판단하는 게 유머 아닌가요?” “이재명 시장이 차기 대선주자 중 하나로 언급될 정도이니만큼 학교에서도 조용히 넘어가자고 생각하는 거 같네요” 같은 학생들의 댓글이 달렸다.
게다가 이 지사의 지도교수는 학교 쪽 보도자료와 달리 이 교수가 아니라 최항순 교수다. 보도자료에 왜 최 교수의 언급이 담기지 않았는지 묻는 의 질문에 가천대 쪽은 “최 교수가 이미 퇴직한 상황이어서, 논문 심사를 같이 한 이 교수가 멘트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왜 지도교수로 표기됐는지, 표절 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보도자료에 왜 이런 내용의 부가설명이 담기게 됐는지 등의 경위는 “오래전 일이라 담당자가 전부 바뀌어서 알 수 없다”고 했다.
“용납하기 힘든 거짓말”
어쨌거나 이 지사는 이후 논문 관련 의혹이 제기되면 ‘학교가 표절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응수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그는 “논란되는 것조차도 싫어서 반납했는데, 대학에서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3월14일, 지상파 방송사 주최 합동토론회), “논문 표절을 자꾸 말씀하시는데, 해당 대학이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왜 그걸 무시하고 계속 변희재가 주장했던 것을 말씀하시나”(3월17일 경선 4차 합동토론회) 등이 그런 발언이다.
지난 14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선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인용 표시를 다 하지 않고 썼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표절이 맞죠. 그래서 그냥 ‘문제가 있다’ 인정하고, 저한테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반납하고 제 이력에서 깨끗이 지웠습니다.” 이전과 달리 이 지사 스스로 표절을 시인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이라는 전제나 다른 부가 설명에서 드러나듯 잘못이 없다는 인식 자체는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표절은 “범죄행위에 가깝다”며
석사 논문 77쪽 중 49쪽에 출처 없고
쪽 전체 ‘복사’한 것도 24쪽 이르러
그렇다면 이 지사의 논문은 표절일까, 아닐까? 정적의 무분별한 공격일까, 본질을 가리려는 발화자 공격일까? 사회학 박사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 국회도서관과 인터넷 학술자료 검색 등을 통해 직접 확인한 바로는, 이 지사 논문에서 ‘인용 표시’ 없이 다른 자료를 그대로 게재한 경우가 77쪽 가운데 3분의 2에 이르는 49쪽(63.6%)에서 발견됐다. 특히 이 가운데 쪽 전체를 출처를 밝히지 않은 다른 논문으로 채운 게 24쪽이나 됐다. 이렇게 ‘정체’ 없이 가져다 쓴 자료는 모두 12개다. 오 정책위원장은 “이건 표절이 아니라 복사 수준”이라며 “이렇게 증거가 명백한데도 대중 앞에서 인용을 빼먹었다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건 용납하기 힘든 거짓말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건 정직성인데, 이렇게 금방 사실이 규명될 수 있는 사안조차도 시인하지 않고 가벼운 불찰인 것처럼 설명해서야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2005년 제출한 가천대 석사학위 논문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 7~9쪽. 사회학 박사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 분석해 표시한 이 자료를 보면, 7쪽 상단은 한형서의 ‘지방자치단체의 부패 실태와 반부패정책’(2003년) 110쪽을, 7쪽 하단부터 9쪽 하단까지는 윤태범의 ‘부패방지를 위한 사회역량의 강화와 시민단체(NGO)의 역할’(2001년) 76~78쪽을 출처 없이 가져다 썼다. 7쪽과 9쪽에선 원문에 쓰인 각주까지 그대로 옮겨 썼다. 이렇게 출처를 밝히지 않은 자료를 전체 쪽에 그대로 옮긴 게 이 논문 77쪽 가운데 24쪽에 이르고, 한 쪽에서 한 대목이라도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모두 49쪽에서 ‘복사’의 흔적이 보인다. 오건호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논문 표절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인사청문 대상자가 국무위원으로까지 확대(2005년 7월)된 이후인 2006년 초, 공교롭게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문제가 불거진 뒤부터다. 검증할 대상과 항목이 동시에 늘어나고, 야당과 언론이 ‘열일’을 하면서 인사청문회에 서는 이들 가운데 논문 표절 의혹 꼬리표가 붙지 않는 이는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 2006년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자기 표절’ 의혹에 휩싸이다 임명 13일 만에 사퇴했고,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2014년)는 지명 철회,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2016년)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2017년)는 사퇴했다.
국회의원도 논문 표절 의혹을 사는 건 똑같다. 2012년 학술단체협의회는 19대 국회 당시 유재중·강기윤·염동열·신경림·정우택 새누리당 의원, 정세균 민주통합당 의원, 무소속 문대성 의원 등 7명의 학위논문 또는 연구논문이 모두 “심각한 표절”이라고 밝혔다. 20대 국회에서도 정종섭·김종태·함진규·민경욱 새누리당 의원 등의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공천장 쥐려는 ‘안전장치’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과거 논문 판단 잣대가 그리 엄격하지 않았던 탓이 크다. 표절과 같은 연구부정행위를 정부가 처음으로 규정한 게 ‘황우석 사태’ 이후인 2007년 2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과학기술부 훈령)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고위공직자 인사 배제 7대 원칙’ 가운데 하나로 2007년 2월 이후 연구부정을 넣은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당시 이 지침의 명시적인 적용 대상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는 기관 등에 한정됐고 그 내용도 연구부정행위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정해놓은 데 그쳤다. 이를 보완해 교육부는 학술진흥법상 연구자 등 사실상 모든 연구자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중복 게재나 저자 표시 방법 등 구체적인 문제까지 기준을 세워 같은 이름의 훈령을 2014년 발표했다.
2007년 연구윤리 지침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