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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여성가족부에 이어 통일부까지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외교의 업무와 통일의 업무가 분리돼 있는 거, 어떻게 보면 비효율일 수 있다"라고 한 뒤 "남북관계는 통일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보통 국가정보원이나 청와대에서 바로 관리했다"라며 "여가부나 통일부 이런 것들은 없애고"라고 발언했다.
그는 다음날 페이스북에 실은 글에서는 북한과 타이완(대만)에는 통일부와 유사한 명칭의 기구가 없다고 말했다. "미수복 대륙 영토를 이야기하는 대만에 통일'부'와 같은 조직이 있나? 대륙'위원회'다"라며 "북한에서 통일부를 상대하는 조직이 '부'인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다"라고 한 뒤 "심지어 조평통은 원래 내각이 아니라 조선노동당 산하의 조직이었다"라고 짚었다.
어이없는 주장
동일한 한자문화권이라고 해서 국가마다 동일한 명칭을 쓸 필요는 없다. '부'든 '위원회'든 북한처럼 특수관계에 놓인 상대방과 교류하는 기구라면 넓은 의미의 통일부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준석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관청 명칭을 지을 때마다 한자문화권의 선례를 일일이 참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명칭이 다르다고 해서 관청의 성격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명칭을 쓰든 간에 통일 관련 업무를 다룬다면 통일부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게 이치에 맞다. 이준석 대표는 타이완 대륙위원회가 통일부와 전혀 다른 곳인 듯이 이야기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은 대륙위원회 홈페이지의 '대륙공작 체계(大陸工作體系)' 코너에 속한 '분업과 직무(分工與職掌)'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코너는 대륙위원회의 업무를 "전반적인 대륙정책 및 대륙 사업의 연구·계획·심의·조정, 여러 부처에 걸치는 사항의 직무 집행을 담당한다(負責通盤性大陸政策及大陸工作的研究、規劃、審議、協調及部分跨部會事項之執行工作)"고 소개한다. '대북정책'이라는 표현이 '통일정책'과 통하듯이, '대륙정책' 역시 그렇게 이해돼야 할 것이다.
중국의 위협에 눌려 독자노선을 가려 하는 타이완도 중국을 특수 관계로 대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대륙정책에 관한 전문 기구를 별도로 둘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평통이 정부 산하가 아닌 '노동부 산하'로 출발했으므로 남한 통일부와 다르다는 주장 역시 너무 터무니없다. 이는 북한에 관한 지극히 상식적인 명제와 배치되는 주장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북한에서는 노동당이 국가나 정부보다 위에 있다. 2019년에 통과된 북한 헌법 제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규정했다. 노동당이 최상위에 있으므로, 조평통이 노동당 산하 기관으로 출범한 것은 남한의 통일부가 정부 기관인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보수정당 대표가 이 점을 감안하지 않고 발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북한과 타이완이 '위원회'를 둔 것과 남한이 통일'부'를 둔 것이 대단한 차이점인 듯이 발언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는 1969년 3월 1일 출범한 남한의 국토통일'원'도 '위원회'가 될 뻔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1963년의 민주공화당(공화당)도 국토통일원이나 국토통일부가 아니라 국토통일위원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공화당은 '국토통일위원회 설치'를 당헌 규정으로 못 박았다. 1963년 8월 31일자 기사 '공화당 대통령후보 박정희씨 지명 수락'은 "국토통일위원회의 기구 상설을 내용으로 한 당헌 개정을 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정권은 1961년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설치한 북한의 통일 공세에 대응하고자 국토통일위원회를 만들려 했다가 국토통일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명칭을 바꾸지 않았다면, 남한에서도 '위원회'가 생겼을 것이다. 통일에 관한 기구를 둔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부'냐 '원'이냐 '위원회'냐는 본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박정희 시절' 이미 충분히 설명된 이야기
 
ⓒ 연합뉴스
이준석 대표는 외교부와 통일부의 분리가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는 발언도 했다. 외교부가 있는데도 통일 전담 기구를 따로 설치해야 하는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이미 충분히 설명된 이야기다.
공화당이 국회를 주도할 당시인 1967년 1월 30일 국회 국토통일연구특별위원회가 발행한 는 '외교부를 비롯한 여타 기관으로는 통일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해 1월 31일자 '통일백서 주요 내용'은 그 부분에 관한 의 설명을 이렇게 소개했다.
"현행 정부조직법과 기타 법령은 외무부의 방교국(邦交國, 국교국) 국제연합과와 헌법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 그리고 중앙정보부, 공보부 조사국 제3과, 내무부의 이북오도청 등에서 통일 문제를 분장시키고 있으며, 민간 기구로는 북한해방촉진회, 국토통일협의회, 한국반공연맹(반관반민) 등과 각 정당의 해당 위원회가 있으나 기구의 구성과 규모로 보아 충분한 활동이 불가능할 뿐더러 통일문제의 제1차적 작업인 '문제에 대한 종합적·체계적 연구'를 전담할 기구조차 없는 형편이다."
 
외무부에서도 통일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외무부의 특성상 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중앙정보부 같은 부서에 맡긴다 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비(非)전문기구에 맡겼더니 기초 작업인 '통일에 관한 종합적·체계적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위 기사에 요약된 바에 따르면 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우리는 북괴의 실태와 전술을 정확히 파악하며, 우리의 통일 방안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구의 설치가 절실히 요청된다."
기사에 따르면 는 결론을 내리는 대목에서 "통일연구위는 국토통일 문제에 대한 전담 기구를 우선 정부 내에 독립된 기구로 설치하여야 할 것이며, 국회에도 이에 상응하는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통일에 관한 전문 관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의견에 따라 박정희가 만든 게 바로 국토통일원이다.
공화당과 박정희가 통일에 대한 진정한 열의가 없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런 그들조차도 남북관계를 전담할 관청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그들이 꼭 통일을 위해 통일 관청을 뒀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점은 국토통일원을 통일원으로 격상시키고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킨 노태우 정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가 1963년부터 통일 전담 기구의 설치를 운운한 것은, 북한이 조평통을 신설한 데 대한 대응 차원의 일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통일원을 격상시킨 것은 1980년대 후반의 탈냉전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심화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통일에 관한 논의가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상대방의 통일 공세에 대응하고자 그런 조치들을 취했던 것이다.
대륙위원회 등을 두고는 있지만 통일에 대해 소극적인 타이완이 중국의 공세에 시달리는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통일을 논의할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소극적 태도를 취하게 되면 상대방의 공세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통일을 하겠다'는 선언은 자신감 없이는 나오기 힘들다. 통일을 논의할 상대방 앞에서 '통일을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고 '통일정책을 축소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자신감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보수 정권들이 실제로는 통일 의지가 없으면서도 통일 기구를 정비한 것은 북한에 대한 자신감을 과시하는 한편, 통일 논의가 부각될 때 상대방에게 밀리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1961년에 조평통을 설치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 설치한 것은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남한에서 통일운동의 열기가 고조된 데 대한 따른 대응 차원의 일이었다.
2003년에 제3호·제4호에 수록된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의 논문 '4.19 직후 한국사회와 민족일보'는 "1950년대 후반 주한미국공보원은 한국의 농민들을 상대로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소원하는 바가 무엇이오?'라고 묻는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소개한다.
논문은 이 설문이 주관식이었는데도 '민족의 통일'이라는 응답이 16.39%로 3위를 기록했다고 한 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통일문제를 민족적 이상과 명분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현실과 직결된 문제로 생각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런 통일의 의지가 4.19 혁명을 계기로 뜨겁게 분출하자, 북한이 이에 대비할 목적으로 만든 게 조평통이다. 통일을 위해 조평통을 설치한 측면도 있지만, 남한의 통일 공세에 대비할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꼭 통일을 위해 통일 전담 기구를 설치하는 게 아니라 동족국가와의 선의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수 정당을 이끄는 국민의힘의 대표가 이런 맥락도 고려하지 않고 통일부 폐지를 운운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통일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분단국가에서는 통일 전담기구를 두는 게 현실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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