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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타
예능 프로그램이 과거의 음악을 소환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이것은 시청자의 보편적 기억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한 기획이다. 우리는 이미 , 그리고 등을 보았다. 그중 가장 큰 파급력을 과시했던 것은 단연 의 '토토가' 시리즈였다. '토토가'는 '만인의 명곡'을 소환하고, 노스탤지어를 상찬했다. X세대 청년이었던 김태호 PD가 자신의 청춘에 보내는 헌사이기도 했다.
반면 SBS의 유튜브 웹 예능 '문명특급'이 과거를 다루는 방식은 전자와 비슷한 듯 다르다. 90년대생인 홍민지 PD와 진행자 재재(이은재)는 동시대 케이팝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기획한다. 케이팝 가수들을 '한류 열풍의 주역' 대신 아티스트로 대하고, 케이팝 문화를 소비하는 '덕후'의 존재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만인의 명곡보다는 서브 컬쳐를 다루는 방식에 가깝다. 당연히 기성 미디어에서 볼 수 없었던 접근법이다.
지난해 진행된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 프로젝트는 B급 코드에 집중했다. 다소 조악한 완성도, 지금 다시 보면 어설픈 안무나 가사가 눈에 띈다. 케이팝이 고도로 발전된 지금 다시 듣기에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을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조롱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해 그 시절을 자조하고 즐긴다. 위대한 과거로 공인되진 못할지언정, 이들은 실패의 미학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돌아온 '컴눈명'
 
▲ 지난 6월 11일,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콘서트'가 SBS 채널을 통해 방송되었다. ⓒ 문명특급 - MMTG
 
지난 6월 11일,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콘서트'가 SBS 채널을 통해 방송되었다. 한 구독자의 건의에서 출발한 후속 프로젝트 '컴눈명'은 '숨듣명'과 온도가 조금 다르다. 지금 보아도 변함없이 멋진 노래와 안무를 다룬다. 히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멋진 곡을 그때는 왜 응원하지 못했을까?'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이번 '컴문명' 콘서트에는 샤이니와 2PM, 오마이걸, 애프터스쿨, 나인뮤지스 등이 출연했다. 샤이니의 'View'는 6년 전에 발표된 곡이지만 딥하우스 사운드와 노랫말, 의상 등에서 세련미가 빛난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2PM의 '우리집'은 시대를 타지 않는 섹슈얼리티로 재조명받았다. 오마이걸은 활동 초기의 노래 'Closer'를 불렀다. 발표 당시에는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오마이걸의 색채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곡이다.
샤이니와 오마이걸은 여전히 케이팝 신(scene)의 중심에 있다. 컴백을 앞둔 2PM이 5년 만에 음악 방송 무대에 서긴 했지만, 이들을 추억의 존재라고 부르기는 민망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모은 팀은 단연 걸그룹 애프터스쿨과 나인뮤지스였다. 두 팀은 활동기 내내 부침을 거듭했고, 독특한 콘셉트가 오늘날 재평가받으며 '시대를 잘 못 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팀이 해체된 이후 꾸준히 케이팝 마니아들의 그리움을 받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 문명특급 - 컴눈명 콘서트에 선 애프터스쿨 가희 ⓒ 문명특급 - MMTG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은 추억 속의 모습 그대로 귀환했다. 애프터스쿨은 'BANG'과 'DIVA'의 무대 의상을 입은 채 무대에 섰다. 리더 가희를 중심으로 절도있게 움직이는 군무는 여전했다. 가희(어린 세대에게는 아이돌의 댄스 트레이너로 익숙할)는 오랜만에 무대에 섰지만, 여전히 절륜한 솜씨를 과시하는 구심점이었다.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던 래퍼 베카 역시 이 무대를 위해 한국에 왔다. 정아는 임신한 상태로 무대에 섰다고 한다. 나인뮤지스의 문현아는 당일까지 육아를 하다가 와서 'Dolls'의 무대를 선보였다. 아이돌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애린의 랩도 여전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동시에 변하지 않았다.
케이팝은 추억의 한 조각이 될 수 있게
선배들의 무대를 지켜보던 몬스타엑스의 민혁은 "이게 케이팝이지"라는 말을 내뱉는다. 어린 시절 장기자랑에서 그들의 춤을 따라 췄다는 간증(?)도 줄을 잇는다. '컴눈명'의 무대는 단순히 공연으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추억과 어우러졌기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재재와 함께 MC를 맡은 승희(오마이걸), 키(샤이니), '케이팝 교수님'으로 알려진 승관(세븐틴), 그리고 이대휘(AB6IX), 최유정(위키미키), 전소미, 이채연 등의 패널들은 가수들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2008년부터 현역이었던 키를 제외하면, 이들은 2세대 케이팝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다. 전주를 듣고 경건하게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은 관객의 공백을 채우고, '덕후'를 대변하면서 거리를 좁힌다.
 
▲ 웹 예능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콘서트'가 SBS 채널을 통해 방송되었다. ⓒ 문명특급 - MMTG
 
1993년에 태어난 나 역시 '컴눈명'을 시청하는 동안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흥미롭고도, 낯선 순간이었다. 자라나면서 일상적으로 소비했던 노래들이다. 그 자리에 있는 노래들이었지, 단 한 번도 명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이들에게는 새로운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다. 케이팝의 역사가 쌓이면서, 이들은 '명곡'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돌아오지 않을 노스탤지어로 소비된다. 아뿔싸, 이 순서가 우리에게 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 했다.
나는 케이팝 2세대 그룹들이 전성기를 보내던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야자(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MP3 플레이어로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고, 장기자랑에서 비스트의 춤을 추던 친구들을 보며 환호했다. 나와 같은 시대를 향유했던 밀레니얼 세대의 시청자들은 나인뮤지스, 애프터스쿨의 귀환을 보면서 '케이팝의 기강을 바로잡으러 왔다'고 말한다.
'케이팝의 기강'이 무엇으로 정의되는지는 논외로 두자. 확실한 것은 과거의 케이팝이 추억 속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레트로(Retro)는 점점 더 가까운 타임라인을 향해 움직인다.
2016년 5월,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의 농성 집회에서 민중가요의 자리를 대체한 것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꿈'을 주제로 삼았던 이 곡은 퀴어문화축제에서도 울려 퍼진다. 이들은 대거 사회에 진출했고, 같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으며, 담론의 적극적인 생산자가 되고 있다. 추억의 힘은 세다. 케이팝을 들으며 자라난 이들은 이제 자신이 듣던 노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애프터스쿨의 노래를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나조차도, 10년 전 나온 'DIVA'의 랩 가사를 모두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 세대에게 케이팝은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다. 케이팝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글로벌화되고, 리스너들의 취향이 개인화된 상황에서, 오늘날의 케이팝이 과거만큼의 보편성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케이팝은 간직되리라 믿는다. '내 10대의 모든 것'이었다는 간증과 함께, '그때가 좋았다'라는 회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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