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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우강이 전하는 현대 묵시록
오직 배로 들어갈 수 있는 오지 마을
수력발전 댐 들어서고 쫓겨난 사람들
“우리에게 강은 신…그 신을 죽였어요”
라오스 최북단 퐁살리와 루앙프라방을 잇는 우강의 풍경. 노동효 제공
“이게 끝이야. 아름다운 친구여. 이게 끝이야. 내 하나뿐인 친구여…”
짐 모리슨이 노래하는 동안 누런 먼지가 일고, 울창한 야자수 숲 위로 헬리콥터가 날고, 네이팜탄이 터지며 주홍빛 불덩펠러 소리 위로 선풍기 이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프로날개 도는 장면이 오버랩 된다.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운 채 실링팬 도는 모습을 보며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는데, O가 소리쳤다.
“형, 서둘러! 오늘 배를 타려면 9시까지 선착장으로 가야 해!”
벌떡 일어나는데 번쩍하고 〈디 엔드〉에서 ‘친구’는 ‘지구’를 뜻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가인 O와 나는 남우(Nam Ou. 라오스어로 ‘남’은 강을 뜻한다), 즉 우강을 따라 루앙프라방까지 갈 작정이었다. 중국 윈난성과 접한 라오스 퐁살리주에서 발원한 우강은 448㎞를 구불구불 흘러 메콩과 합수한다. 우강 상류를 출발, 합수 지점까진 스피드보트로 이틀, 슬로 우보트론 사흘이 걸린다고 했다.
우강 중상류에서 가장 큰 도시 므앙크아. 노동효 제공
므앙응오이 인근 외딴 마을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 노동효 제공
우강을 종주하기로 한 건 〈지옥의 묵시록〉 때문이었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윌라드 대위는 내륙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 커츠 대령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는 해군 경비정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전쟁의 광기를 목도하게 되는데…. 나는 아열대 밀림 사이를 흐르는 강의 풍취를 경험하고 싶었다. 영화 속 설정으로 짐작하면 메콩이지만, 이젠 많은 도시와 마을이 들어섰다. 차선책으로 우강을 뱃길로 종주하기로 했다. 차가 닿는 도시는 므앙크아 정도. 강줄기 따라 오르내리는 배가 문명을 잇는 오지였다.
강으로 가는 썽떼우(트럭 짐칸을 개조한 대중교통수단)에 올라탔다. 도시를 벗어나자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앞바퀴가 마른 황토와 마찰하면서 먼지를 피워 올렸다. 트럭 안은 곧 붉은 먼지로 가득 찼다. 승객들은 소매나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지만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는 먼지를 막을 순 없었다. 5분이 지나지 않아 승객들의 머리카락이 황토색으로 변했다. 먼지가 내려앉아 머리카락 색깔이 변한 나를 보며 현지인들이 웃었다. 입은 가리고 눈만으로 웃었다. 웃는 그들의 머리카락도 뿌옇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로서로 보며 키득거렸다. 30분지나 선착장에 닿았을 땐, 모두 머리카락 쇠한 노인 같았다.
털어도 뻑뻑한 머리카락 외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슬로보트에 올라타기 직전 문제가 발생했다. 가방을 뒤적이던 O가 말했다. “이런! 카메라 배터리랑 충전기를 숙소에 꽂아둔 채 나왔어!” O가 사공에게 사정했지만 곧 출발할 배가 기다려 줄 리 없었다. 숙소에서 돌아온 O가 선착장을 오가며 수소문한 끝에 스피드보트 사공을 찾아냈다. 슬로 우보트 티켓은 정가가 있지만, 스피드보트는 하루 대여비를 내야 한다. 우리 둘뿐이니 슬로보트 승선비의 4배가 넘었다. “어쩌죠?” “내일 가느니, 값을 치르고 지금 가자!”
출발한 지 10분이 되지 않아 오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로보트엔 덮개가 있지만 스피드보트엔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이 없었다. 시간을 허비한 탓에 이미 정오, 직사광선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태양열에 달궈진 수면도 뜨끈, 바람조차 뜨거웠다. 햇빛을 가릴 요량으로 모자를 썼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조여야 했다. ‘젠장, 아침부터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는 게 아니었어.’
우강의 하류에서 관광객을 태우고 인근 마을을 오가는 슬로보트. 노동효 제공
한 시간쯤 지나 햇살과 무더위에 익숙해지자 강 풍경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인공구조물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산과 숲 사이로 강이 흐르고 간혹 외딴 마을이 나타났다. 선착장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배를 댈 수 있는 모래톱 위 언덕에 터를 잡고 있었다. 홍수로부터 안전하면서, 그늘을 드리는 키 큰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모래톱과 강은 아이들의 놀이터기도 했다. 꼬맹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김소월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노래하던 목가적 꿈이 실현된 이상향 같았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석회암으로 된 산과 언덕이 울퉁불퉁한 근육을 드러냈다. 눈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 형상을 바꾸다가 사라지는 구름, 아열대 식물이 자라는 정글 위로 날아가는 물새 떼, 해발 1~2천 미터를 넘나드는 산봉우리가 우뚝 솟은 풍경을 쳐다보노라면 감탄이 저절로 터졌다. 절경이 나타나자 O가 사공에게 배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달리는 보트에선 초점이 맞는 사진을 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르는 사공이 배를 세웠다. 그러나 배를 멈추게 한 이유를 알게 된 사공은 두 번 다시 O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후 5시 무렵 소도시 므앙크아에 닿았다. 종일 굶은 터라 식당부터 찾았다. 주문한 요리를 먹는데 뜻밖에도 우리 말고 또 다른 외국인 여행자가 있었다. 백인계 노인이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학교수로 지내다 퇴직하고 여행 중이라고 했다.
“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건 〈지옥의 묵시록〉 중 한 장면으로 들어온 것 같아.”
“나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 대학에서 가르친 과목이 뭐죠?”
“영문학.”
내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 애독자라고 하자, 그가 반색했다. “히피들은 그 책을 성경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녔지. 시대를 앞선 작가였어. 지구가 이렇게 엉망이 될 줄 진작 알았다는 듯 글을 썼으니까.” 그는 인도차이나에서 낯선 풍경과 문화를 경험하는 건 즐겁지만, 도시인들이 비닐봉지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함부로 버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불편하다고 했다. 오지 마을이나 모래톱에선 볼 수 없었던 플라스틱 쓰레기가 선착장 주변에 떠다녔다.
인간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물론 처음부터 쓰레기 생산자였던 건 아니다. 인간이 지은 집, 만든 옷, 먹은 음식은 대부분 자연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쓰레기 생산에 시동을 걸었고, 석유화학산업의 성장과 함께 폐기물은 급속도로 늘었다. 합성섬유, 플라스틱, 나일론 그물 등. 인구밀집도가 높은 거대도시는 그 자체로 쓰레기를 생산하는 초대형 공장이 되었다. ‘재활용에 대한 믿음’이 절약의 미덕보다 더 많은 소비를 부추겼다. 매립할 양을 줄이기 위해 소각하고, 소각이 공해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매립지를 넓히고, 매립지가 부족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에 쓰레기를 떠넘겼다. 그러나 떠넘겨봐야 지구 안이고 우주로 쓰레기를 내보내지 않는 이상, 지구는 더 커다란 쓰레기 매립지로 변해가는 중이다.
므앙크아에서 묵은 후 아침에 다시 선착장으로 갔다. 슬로보트를 탈 수 있었다. 사공은 강변 마을이 나오면 모래톱에 배를 올려놓았다. 닭을 팔러 가는 아낙이 타기도 했고, 내리기도 했다. 강 가운데 뗏목을 띄우고 사금 캐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펌프로 강바닥에서 모래를 끌어올린 후 금을 추출하고 있었다.
배가 므앙응오이에 닿았고,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강변에서 3㎞가량 숲으로 들어가자 마을이 나왔다. 뜻밖에도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오지 트레킹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했다. 숙소주인이 증명사진이 있냐고 물었다. “왜요?” 방문객들 사진을 모은다며 사진들을 테이블 위에 자랑스레 펼쳐놓았다. 그의 보물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여분의 사진이 없었다. 밤이 되자 이장이 찾아왔다.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어대는 O의 행동거지를 수상하게 여긴 까닭이었다. 오지에선 행동거지가 다른 사람을 간첩으로 의심했다. 수차례 겪은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여권을 보여주자 안심하고 돌아갔다.
다음날 정오가 지나 마을에서 나왔다. 농키아우에서 O와 헤어졌다. 나는 루앙프라방행 보트로 갈아탔다. 일몰 무렵 우강이 메콩과 만났다. 퐁살리를 떠난 지 사흘째였다. 황혼이 번지는 동안 짐 모리슨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이게 끝이야, 아름다운 친구여. 이게 끝이야. 내 하나뿐인 친구여”
루앙프라방주의 선착장에서 본 일몰. 노동효 제공
그로부터 머지않아 우강의 상하류를 잇는 뱃길도 끝장났다. 나는 그 길을 여행한 극소수 여행자가 되고 말았다. 우강에 댐이 들어선 것이다. 중국의 파워차이나가 수력발전용 댐들을 건설하면서 더 이상 배도 물고기도 강을 오르내릴 수 없게 되었다. 환경단체는 멸종위기종을 살려야 한다며 댐 건설에 반대했지만 무시되었다. 내가 우강을 따라 내려오며 만났던 마을은 수몰되었고, 원주민들은 정착촌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강을 터전으로 살아온 원주민들이 고향을 떠나며 울부짖었다. “우리에게 강은 신과 같은 존재였어요. 그 신을 죽였어요.” 수력발전소 터빈 도는 소리가 그 소리를 묻었다. 인간은 또 한 번 자연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승리했다. “숲이 너무 무성하다”며 네이팜탄 투하 명령을 내리던 킬고어 중령의 목소리가 지구 곳곳에서 들리는 듯하다.
“난 아침의 네이팜 냄새가 좋아. 한번은 우리가 어떤 능선을 12시간 동안 계속 폭격했거든. 폭격이 끝나고 올라가 봤지. 아무것도, 시체조차 없더군. 온 능선에서의 그 냄새, 휘발유 냄새 말이야, 그 냄새는…승리의 향기지!”
*〈지옥의 묵시록〉의 원제는 아포칼립스 나우, 〈현대 묵시록〉이다.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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